구의회 의장에 당선되고 각계 각 분야의 많은 선후배들에게 인사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정치인의 세계에서 더욱 큰 꿈을 펼쳐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아무리 뜻이 있고 미래를 향한 보다 높은 이상과 뜻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지만 그 앞에 먼저 존재하고 있는 타인이 인정하는 자격과 시대에 상응하는 요건을 갖추어야만 산재한 모든 난제들을 극복하고 순리도 찾을 수 있고 끝없는 진전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때쯤이었다.
그 어떤 꿈을 펼쳐보고 더욱 높은 삶의 뜻과 보람으로 민의에 다가가는 것이 정치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지금이라도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야겠다는 만학도로서의 승부를 선택한 것이다.
1997년 3월 동의대학교 법정대학교 정치행정학부에 입학했다.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였다.
대학시절은 내게는 또 다른 희망이요 성취의 시절이었지만 또한 고난의 시기이기도 했다. 재학생들과 너무나도 많은 나이 차이에 처음에는 서먹하기도 하고 좀은 계면쩍고 해 맨 뒤편에서 강의를 듣고는 남이 볼세라 강의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다른 강의실로 옮겨가는 쑥스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런 대학시절이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몇 차례 계절이 바뀌고 드디어 전공과목에 들어갈 때쯤은 어떤 작은 여유가 생겼다.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하고 정치계와 신앙계에서도 이름을 갖고 있는 내가 뭐 부끄러울 게 있나 싶었다. 뭐가 못나서 내가 이렇게 움츠러드나 하는 생각이 들자 당당한 본래의 자신 있는 내 모습이 되어갔다.
나름대로 열심히 인생을 살았고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자신감 있는 나의 면모가 어느 누구에게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이때부터 어떤 자긍심이 나를 이끌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더욱 자신감 있는 대학생활을 영위하리라 마음먹고부터는 모든 것이 새로운 희망으로 전도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에 의한 수업으로 새롭게 향학열을 불태우며 조금씩 정치에 대한 신지식과 신경지가 내게 더욱 큰 혜안으로 다가왔다.
배움에 무슨 나이가 있으랴. 요즈음 시대는 자기 시간을 잘 활용해 많은 자격증을 습득하기 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 방면에 도전하며 활약하는 시대가 아닌가. 무엇이 부끄러우랴. 나도 나름대로 이만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한 인생 아니랴. 이렇게 생각하니 조급하고 부끄러운 그동안의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스스로 어울리며 어떤 서클이나 모임에 나가 커피도 함께 나누어 마시며 담소하니 젊은이들도 내게 갖던 어려움과 나이차로 인한 어떤 편견과 거부감도 일시에 해소되고 스스로 여러 방면에 대해서 내게 묻고 질문하고 때로는 여러 개인 사정들도 스스럼없이 인생 선배로서 의논하는 사이로 다가왔다.
여태까지의 가슴 졸이며 쑥스러워하던 생각들은 온데간데 없고 마음마저 한없이 편안하고 즐거워졌다. 역시 모든 것은 마음먹고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혹독한 날이나 몸이라도 아플 때면 이 나이에 무슨 대학이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나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해가 가고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자 나를 전에부터 정치적인 야심이 있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경계하던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분명 양한석이는 다음 국회의원에 나서려 명분과 약력으로 무장하려 대학에 다닌다는 입소문이 난 것이다.
처음에는 괘씸하고 다소 신경이 쓰여졌으나 어느 사회 어느 곳이든 남을 비방 모략중상하는 부류들이 있다는 것을 많이 체득한 터라 더욱 당당한 모습으로 그들에게도 자신있게 대할 수 있는 용기도 절로 생기는 것이었다. 어떤 목적의식을 초월한 마음의 여유였다. 드디어 학사과정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동의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순간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내 인생이 되돌아보아지고 내 용기가 하나의 결실과 수확으로 다가오자 나 스스로도 내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학 박사의 학위논문은 ‘정책과정에서의 정책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이었으며, 부제는 ‘한국환경정책과정 사례를 중심으로’였으며 지도교수는 전용주 교수였다.
그날은 찌는 듯한 팔월인데도 여름답지 않게 제법 가을을 재촉하듯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게 아닌가. 한없는 마음의 즐거움과 마침내 해냈다는 내 안의 커다란 성취욕이 눈부신 녹음만큼이나 푸르른 잎새 한아름으로 내게 신선한 축복을 주었다.
대학 입학 후 구 년만의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이 유순하다고 이웃어른들이 귀여워했으며 장래 재상감이라고 집안 어른들의 촉망을 받았지만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꼭 밀어붙여 끝장을 보는 내 마음 속 하나의 결실도 이렇게 만학도의 나이에 수확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교정을 걸어 나오면서 어릴 때 서당에서 공부하던 시절과 보통고시에 응하던 그때의 순간들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맨 마지막 한 구절의 교훈 같은 말씀이 스치듯 지나갔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