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을 정할 때 처음 먹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들은 적이 있다. 이유인즉 사람이 어떤 결정을 할 때 처음 먹은 마음이 선한 것이고 그다음 드는 생각은 마귀가 훼방을 놓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을 때가 많다. 교회 바자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아침 일찍부터 외출준비를 했다. 그런데 짧은 시간에 그야말로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오늘 써야 할 원고도 있는데 그냥 집에서 일할까? 나 하나 안 간다고 바자회가 못 열릴 것도 아니잖아? 기껏해야 기만 원 어치 사고 말 건데. 화장하던 손을 멈추고 서 있는데 아니야, 애써 준비하는 회원들도 많은데 참석해서 팔아라도 드려야 수입이 올라가서 선교헌금을 채울 수 있을 것 아닌가? 가야 한다, 몇 번이나 더 갈 것 같으냐? 아니 네 나이를 생각해 봐, 이제 그만 가도 괜찮아. 아니야 양심이 있지 선교회원이면 당연히 가야 해.
이러기를 이미 며칠 전부터가 아닌가. 하나님께 간다고 처음 마음 먹을 때 이미 약속드린 일이라 결국 일찍 집을 나섰다.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날아가듯 걷고 있다. 교회에 도착해 보니 벌써 장은 다 서 있고 사람들도 꽤 와 있다. 한 바퀴 둘러 보고 들깨가루부터 샀다. 살 것들을 몇 가지 점찍어 놓고 돌아서는데 사무장 집사님이 저쪽에서 오고 있다. 잘됐다 싶어 다가가서 전 좀 사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란다. 메밀전을 몇 장 사고 돈을 꺼내니 깜짝 놀라며 제가 사드리는 건데 왜 돈을 내느냐고 질색한다. 내가 사드린다고 했으면 안 따라오셨을 것 아니냐며 전을 들려 드렸더니 껄껄 웃는다. 한 가지 계획은 성공했다.
다음은 목사님들 간식이다. 우리 교구 목사님께 전화를 거니 못 받는다는 말만 울려나온다. 두리번거리는데 방문 하나가 열리더니 우리 목사님이 나오신다. 목사님들 간식을 좀 사드리고 싶은데 가져가는 수고 좀 해주시라고 사정해서 마당으로 나갔다. 우리 목사님 몫과 모든 목사님이 나누어 드실 몫을 따로 싸서 들려 드렸다. 오늘 목적은 90% 달성이다. 그동안 벼르던 일을 했다. 이제 건어물 조금 사고 점심을 때우면 된다. 우리 교구장이 굽고 있는 전을 사서 조금 먹은 후 얼갈이김치 한 봉지를 샀다. 약간 무거워진 장가방을 들고 마당을 나오는데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오늘 끓은 변덕 죽 중에서 참석이라는 죽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 은혜였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