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에 쓴 『이기적 유전자』는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베스트셀러로 유행한 적이 있다. 도킨스는 이 책을 통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키고 나아가서 생명을 보는 진화론적인 관점을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도킨스에 의하면 약 35억년 전 원시지구의 특별한 환경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생명이 시작되었고,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 그리고 각종의 식물과 동물로 진화하였으며 마침내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나타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에 따라 살아남거나 도태되는 진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생존본능을 극대화한 “이기적인” 유전자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물론 유전자가 의식이 있는 존재는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치열한 생존경쟁 하에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유전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미와 같이 서로 협동하거나, 벌과 같이 집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현상도 유전자의 이기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개미나 벌의 집단이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한 개체가 희생해서 전체 집단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이타적인 행동이 사실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도킨스와 같은 진화론자들에 따르면, 물질의 우연한 결합에 의해 탄생한 생명체가 단지 이기적인 생존본능에 이끌리어 서로 맹목적인 무한경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 생명 세계의 본질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도킨스가 그의 책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없다고 주장하고 나아가서 종교가 모든 사회적 분쟁과 악의 근원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도 그의 이러한 세계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생명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도킨스와는 전혀 상반된 입장에 있는 생물학자들이 있는데 그중의 대표적인 학자가 프란스 드 발(Frans De Baal)이다. 프란스 드 발은 영장류 연구의 권위자로서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의 행동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 동물과 인간의 행동에 관한 수많은 통찰을 보여주었다. 대표적인 저서인 『공감의 시대』를 읽어 보면 그의 생각이 얼마나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와는 다른가를 잘 알 수 있다.
영장류들이 제한된 식량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상황에서조차, 집단 내에서 협력이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강자가 약자를 보살피고 도와주는 동료애를 보이는가 하면,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한 동료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프란스 드 발은 이러한 공감 능력이야말로 다양한 동물들의 본능속에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생물의 생활 현장에는 단지 생존을 위한 경쟁만이 아니라 상호 협력을 통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황도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혹한의 남극대륙에서 서식하는 펭귄들이 생존을 위해 집단적으로 밀집하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서로 돕고 협력하며 동료애를 통해 생존하고 번성하게 된다면 인간 사회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만 살겠다는 탐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감 능력이 더욱 절실해지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이 아니라 사랑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정신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