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다보면 알기 어려운 구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에스겔 30장의 말씀을 ‘개역개정판’으로 읽어본다. “내가(=하나님) 노 나라를 심판하며… 노 나라의 무리를 끊을 것이라… 노 나라는 찢겨 나누일 것이며…”(14-16절)
여기서 노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어디를 지칭하는 것인가? ‘개역’ 구약성경을 보면 ‘노 나라’가 아니다. 단순히 ‘노’라고 되어있다. 히브리 원문 성경을 보아도 ‘노(No)’라고만 되어 있다. 왜 ‘개역개정판’에서는 원문에는 없는 ‘나라’라는 말을 첨가해서 ‘노 나라’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여간 앞에 인용한 에스겔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노’라는 곳을 심판하시고 징벌하시겠다는 내용의 말씀이다.
‘노’라는 곳은 어디인가? ‘노’는 대제국이었던 고대 애굽의 오랜 수도였던 테베(Thebes)를 지칭한다. 테베는 고대 애굽 문명의 중심지로서 거대한 규모의 유적들이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남아 있다. 당연히 UNESCO는 이곳을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하였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테베’라는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전 332년 알렉산더가 애굽을 정복한 후, 희랍 사람들이 개명한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대 당시 애굽 사람들은 원래 와세트(Waset)라고 불렀다. 구약성경에서는 그곳을 ‘노’ 또는 ‘노 아몬(No Amon/Amun)’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훔 3:8) ‘아몬’은 고대 애굽의 최고신이었다. ‘노’는 최고신 ‘아몬’을 섬기는 도성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사족 한마디: 고대 애굽인들이 사용하던 상형 문자는 모음이 없는 ‘자음 문자’였다. 오늘날 학자들은 상형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 발음하며 읽기는 어렵다. 모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고신을 ‘아몬(Amon)’으로 발음했는지 ‘아문(Amun)’으로 발음했는지 알기 어렵다.
한 가지 더 첨가한다면, 구약성경이 기록된 히브리어도 22개 자음으로만 되어 있는 자음 문자이다. 원래는 모음이 없다.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쓰여진 ‘사해 사본’도 자음으로만 쓰여져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음 없이 자음으로만 히브리어를 쓰고 있는 것이다. 법률문서만 제외하고, 신문, 잡지, 모든 책들은 자음으로만 인쇄되어 있다. 외국인이 웬만큼 히브리어를 공부해서는 이스라엘에서 출간되는 신문이나 책을 읽기 어려운 이유이다.
다행히도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모음 부호가 첨가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래도 히브리어는 어렵다.) 서기 6~9세기 사이에 유대인 랍비들이 모음 부호를 고안해내서 자음으로만 쓰여진 원문 성경에 이를 첨가해 놓은 것이다. 모음 부호가 첨가된 히브리 원문 성경을 ‘마소라’ 본문(Masoretic Text, 약칭 MT)이라고 부른다. 구약 39권 전체가 들어있는 최고(最古)의 MT 사본은 서기 1008년에 완성된 레닌그라드 사본이다. 그러나 이보다도 연대적으로도 앞서고, 정확도에 있어서도 훨씬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알레포 사본’이다. 시리아 알레포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보관되어 있었던 알레포 사본은 1947년 11월 그곳에서 일어난 반(反)유대인 폭동의 와중에 총 491페이지 중 197페이지가 유실되어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