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양파의 껍질을 하나씩 벗기는 것과 같이 이번 LH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불거지는 동시다발적 공직자 비리와 불법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가운데 특이한 사실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공기업(LH 포함) 경영평가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100분의 3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이 숫자는 우리나라의 공기업에서는 그 업무수행과 직원들이 행동에서 <윤리>라는 이슈는 처음부터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발견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윤리>라는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만약에 이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와 정부를 비롯한 기관들이 <윤리>란 개념없이 행동한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는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것은 역사상 가장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세상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 양보, 희생, 기부, 용서, 사면, 탕감과 같은 너그러움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며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남이야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러한 ‘선(善)’한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의 삶이 이 정도라도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 그리고 사회생활을 통해서 무엇이 ‘선’한 삶인가를 가르치며 배우고 또 그것을 실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더더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모든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복(公僕, Public Servants)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국민을 위한 봉사’란 의미다. 봉사란 원래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고 즐거워서 하며 받는 사람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것이 그 원래의 모습이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이 아무리 살벌하게 보이고 모두가 약육강식(弱肉强食) 때문에 적자만이 생존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도 삶을 흐뭇하게 만들고 선한 행동을 조금도 계산하지 않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공공기관 역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도 그랬지만 얼마 전까지 영국에서는 공무를 맡은 사람은 자기 돈으로 경비를 써 가면서 봉사했다고 전한다. 지금도 미국의 대사 중 일부는 민간에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로서 해외공관 경비를 자기 돈으로 아끼지 않고 쓴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나 그래도 공직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 다수의 나라에선 공직자 윤리행동강령(Code of Ethits)을 제정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지 아닌지를 감시하는 조직까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복잡한 사회라고 하나 일반적으로 선진국 사회는 공직에서 윤리강령을 위반해서 면직된 사람을 별로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늘 무엇을 비교할 때에 그 기준(?)으로 활용하는 OECD 회원 국가들은 어떻게 하는가를 알아보면 위의 공직자의 윤리적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 대부분 나라는 행정에서 그들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하고 추구하는 가치들을 공직자의 윤리행동강령이라는 규범을 통해서 실천하는데 그 중요도에 따라 열거하면 (1)공정성(24), (2)합법성(22), (3)청렴성(18), (4)투명성(14), (5)효율성(14), (6)평등성(11), (7)책임감(11), (8)정의감(10) (OECD(2000), Trust in Government)의 순위이다. 이것과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과연 우리는 우리의 행정에서 그러한 가치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업무를 처리하며 또 그것을 직접 다루는 직원들의 직무평가에서 그런 가치가 얼마나 공직자 행동의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어있는지 알 수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 나라의 정부를 평가하는데 주요한 가늠자 노릇을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어떻게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며 그에 걸맞는 행동에 얼마나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는가인데도 말이다. WEF의 국가간의 경쟁력 순위나 국제투명성기구(Transperancy International)의 청렴도 순위는 모두 그러한 지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공직자의 윤리행동강령이란 단순히 전시용이거나 일회적 행사가 아니고 공직자 평가의 중추적 기준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말할 것이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