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과 요시아의 유적지이기도 한 므깃도(Tel. Megiddo)
열왕기상 9:15-19에 의하면, 므깃도는 솔로몬이 건축한 강력한 북방요새이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다.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솔로몬의 아내인 자기 딸 에게 예물로 주었다.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였다.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였다.
열왕기하 23:28-30에 의하면, 므깃도는 요시야가 애굽의 느고 왕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곳이다. 애굽의 왕 바로 느고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 유브라데 강으로 올라가므로 요시야 왕이 맞서 나갔더니,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에서 만났을 때 죽였다. 신복들이 요시아의 시체를 병거에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덤에 장사하니 백성들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데려다가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았다.
이스르엘 평지에 위치하여 청동기 시대 이스라엘 도시로 30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전략적인 요충지 중의 하나였으며 바로 인근지역에서 수많은 결정적인 전투가 있었던 성경의 므깃도가 아랍의 마을인 레준(Lejjun)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힌 학자는 14세기 유대학자 하파리(Eshtori Haparhi)였다. 레준 옆에 있는 고대의 언덕인 텔 엘 무테셀림에 구약시대의 므깃도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후에 생긴 마을이 아래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1903~1905년에 독일 동양학회에 의하여 발굴되었다.
여선지 드보라의 이야기는 이 근처에서 시작된다. 드보라는 지휘관 바락을 설득하여 가나안 사람들과 대치하도록 하였다. 바락은 다볼산에 진을 치고 우기에 전쟁 시기를 정하고 맞섰다. 가나안의 전차가 진흙 속에서 갈팡질팡할 때 맞부딪쳤다.(삿 14:14-15) 가나안인들이 서부로 도망치자 기손강의 물이 홍수로 범람할 때, 이스라엘은 다아낙에서 이들을 무찔렀다.
이스라엘 도시에서 밝혀지지 않은 것 중에 므깃도에 세워진 솔로몬의 마구간이란 곳은 아합 왕에 의하여 건축된 것이다. 그 마구간은 장방형의 건물로 약 500마리의 말을 수용할 수 있으며 물통의 흔적도 마구간 뜰에서 발견되었다. 므깃도는 북쪽 이스라엘을 위한 사륜마차의 중심적인 요새로, 대부분 마구간과 왕궁이 차지하고 있다. 유다 왕 아하시야가 반역자 예후에 의해 상처받고 도망가다 므깃도에서 전차사고로 죽은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왕하 9:27).
므깃도에서 요시아는 유다왕국의 위대한 왕으로 기원전 640-609년에 예루살렘을 통치할 때, 유다왕국과 앗시리아에 의해 이미 산산이 분쇄되어버린 이스라엘 북왕국과 화해하려고 시도했다.
당시 앗시리아는 국력이 쇠하여졌고 메대와 바벨론이 강대하여짐에 따라 시리아의 서쪽으로 피해갔다. 애굽의 파라오(Necho)가 앗시리아 원정을 위해 609년 해변길인 비아 마리스(Via Maris)를 통해 북쪽으로 가는 애굽 군대를 봉쇄하기 위하여 므깃도로 그의 군대를 끌고 갔다. 애굽 왕은 요시아에게 사자를 보내어 막지 말 것을 권하였으나(대하 35:21) 돌아가기를 싫어하고 변장하여 므깃도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않고 싸우다가 활에 맞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죽었다.
사실 므깃도는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가 성지에 들어가 얻은 가나안 땅이 아니다. (삿 1:19) 므깃도는 기원전 1000년경 다윗의 시대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지역이 되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강한 후에야”(수 17:13)라는 말씀으로 볼 때, 므깃도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부터는 완전히 이스라엘지역이 된 것이다. 솔로몬은 중요도시 중의 하나로 므깃도를 재건하였다. (왕상 9:15) 솔로몬이 지은 므깃도의 인상적인 문은 하솔, 게셀, 단 등의 세 곳에서 발견된 솔로몬의 삼중 문과 동일하다. 길이 21m, 넓이 17m의 므깃도 문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것 중에 가장 크다.
므깃도 유적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솔로몬의 삼중 문이다. 그 규모가 엄청나서 마치 커다란 성읍에 들어가는 착각이 일어난다. 왜 이런 문을 지었을까? 바로 그 삼중 문 앞 거리나 광장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백성을 심판하는 재판석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한 왕으로 유명하다. 바로 그 지혜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성문 앞에 있는 재판석이다.
19세기 나폴레옹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방에 진을 치고 므깃도를 다시 전쟁터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성지에서 터키군을 멸망시켰던 사건이다. 1918년 9월 말레비 장군이 이끄는 영국 군대가 팔레스타인에 있는 터키군과 가진 전투는 므깃도에서 적군을 양분시켜 해변에서 쳐부순 기병을 이용한 고대식 싸움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투에서 므깃도의 벌판은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5월 30일 밤에 이스라엘 군대는 아랍에 의해 정복된 레준 마을을 공격하여 혈전을 벌였다. 오랜 전쟁의 역사를 치르면서 므깃도는 1964년 1월에 평화의 상징으로 되었다.
성지는 역사를 미리 알고 가면 더 많이 보인다. 므깃도 유적지를 올라가면 돌무더기뿐이니, 더욱 그렇다. 유적지에 올라가기 전에 먼저 충분한 시간을 전시실에 들러서 조형물도 체험하고 벽면에 정리된 지도를 통해서 역사 공부도 하고,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도 관찰하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관람한 후에 텔 므깃도를 탐방하는 것이 좋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