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 상황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사회가 순환되고 그 안에서 예측 가능한 미래를 향하여 노력하며 살아가는 상식의 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비록 고단하고 빡빡하지만 더 나은 삶의 질을 꿈꾸며 살아가는 일상의 흐름이 대처할 수 없는 급류 속 소용돌이로 변하고 있습니다. 기다림과 인내, 근면과 성실의 가치는 더 이상 설 곳이 없는 새로운 가치로의 전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복권 판매대 앞에는 복권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얄팍한 지갑의 서민들입니다. 복권을 사는 사람의 심정보다 좀 더 의욕적인 사람들은 주식을 삽니다. 많은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주식이 되었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세를 몰아 더 공격적이고 모험적인 가상화폐의 투기로 진화되고 있습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단번에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입니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험인 것입니다. 문제는 복권이든 주식이든 가상화폐든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인생의 삶을 반전시키는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가 돈과 관련되어 있지만 그 돈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돈으로 인생반전을 노리는 사람들의 충혈된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거세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인생에게 반전의 기회는 다른 데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진정한 인생의 반전 포인트를 만난 그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성경에 디매오의 아들-바디매오-이라고만 나타나 있을 뿐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름도 없이 버려진 사람으로 비인간적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당시 장애인은 예배 의식에도 참여할 수 없었으며, 가정에서조차 따뜻한 배려를 받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하며 목숨을 부지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과 신앙공동체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외롭고 처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도 삶에 대한 의욕은 강렬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대신 다른 감각에는 민감한 그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감지합니다. 나사렛 예수가 마을을 다니면서 온갖 병자를 고친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촉각으로 감지되는 군중들의 기운에서 그 예수가 바로 지척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인 것을 직감한 바디매오는 온 힘을 다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그의 외침은 절박했고, 간절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제지하며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예수님이 그의 호소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를 불러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예수님께 데려갔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으니 가라!” 짧고도 명료한 대화가 오고 갔고, 그는 곧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인생의 햇살이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삶이 180도 바뀌는 반전의 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반전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찾고, 그의 부름을 받아 만나고, 만나서 자기 삶의 문제를 의탁하는 순간 “알았다!”그 한 마디 말씀에 반전이 일어납니다.
모든 인간은 고통과 고난, 위기와 고비를 수시로 만나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순간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절망의 자리, 어둡고 질척대는 수렁에서 생환되는 반전 포인트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경험하는 반전 포인트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진정한 인생역전의 순간입니다.
손신철 목사
<인천제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