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부임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 중의 하나는 바로 도서관이다. 여수에 살다가 곡성 옥과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나서 여기저기 도서관을 다니다가 눈여겨 둔 광주 무등도서관을 찾았다. 무등도서관은 옥과에서 오면 고속도로 초입에 있어서 여러모로 안성맞춤이었다. 첫 방문에서 도서 대출증까지 만들 생각으로 몇 번의 경험을 기억 삼아 사진 두 장에 주민등록초본 한 통까지 착실히 떼서 무등도서관에 갔다. 첫 대면이라 낯설어 보였지만 이곳이 내가 쉼을 얻어야 하는 곳이라 생각하니 편안했다. 1층 안내실에서 도서대출증을 만든다기에 그곳에서 주소를 적어 제출했는데 담당 직원은 난색을 표명하며 이곳은 시립도서관이라 광주 시민이 아니면 대출증을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광주에 살지는 않아도 광주에서 직장을 다니는 증거가 있으면 해줄 수 있단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인데 행정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냥 열람실로 올라갔다.
아니, 모든 서류를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했는데 내가 광주 시민이 아니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올라오는 내 모습은 어느새 심판대 앞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이 당연히 들어갈 줄 알고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다 준비했건만 생명책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되돌아서야 한다면. 정말 아찔했다. 그래 이것이 천국을 준비하는 자들의 마음이구나. 공부하고 돌아오는 내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비슷한 경험이다. 곡성 옥과교회를 섬길 때, 장신대 선교대학원을 다녔는데 어쩌다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갈 때가 있었다. 그 날도 옥과를 출발해서 광주공항에 도착해서 발권대 앞에 가니 예상대로 대기자 번호에 이름을 쓰라는 것이다. 예약을 하고 싶었지만 교회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예약을 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바로 가서 이용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비행기를 이용하면서 예약하지 않아도 대기자 번호에 이름을 쓰면 모두 타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대기자 명부에 이름을 쓰고 기다렸다. 그런데 그 날 따라 내 뒤에도 사람이 많을 정도로 대기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사람 한 사람씩 발권을 하더니 세상에~~ 내 이름을 부르더니 “이 분까지입니다.” 자기 앞에서 문이 닫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도 나까지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현실 앞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민등록증을 꺼내서 발권을 받으려고 하는데 출입구에서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들어 오면서 소리쳤다. “저 예약했어요.” 이 한마디에 나까지 발권 받는 감사에서 나부터 발권을 못하는 날이 되고 말았다. 그 날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날의 외침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저 예약했어요.”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져지더라.”(요한계시록 20:15)
최정원 목사
<광주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