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준치>는 한국 속담이고, <썩어도 도미>는 일본 속담이다. 일본에서 도미는 모든 물고기의 왕이라고 떠받드는 생선이다. 그러나 한국은 도미 대신 준치를 최고로 여겼다. 준치의 한자 이름을 보면 준치가 얼마나 맛있는 생선인지를 알 수 있다. 준치의 한자는 진어(眞魚)이다. 맛으로 보면 준치가 진짜 생선이라는 의미이다. 또 다른 이름은 시어(鰣魚)이다. 제철이 지나면 완전히 사라진다고 해서 물고기 어(魚) 변에 때 시(時) 자를 사용한다.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은 시어(鰣魚)는 살이 통통하고 맛은 좋으나 가시가 많다고 기록했다. 맛은 좋은 데, 아무 때나 맛볼 수 없는 시어(鰣魚)를 중국에서는 고대의 산해진미인 팔진미(八珍味) 중 하나로 꼽았다.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은 중국의 4대 미인이다. 생김새가 아닌 맛을 기준으로 황하의 잉어, 이수의 방어, 송강의 농어, 양자강의 시어를 선정한 중국인들은 이중 양자강의 시어(鰣魚)를 의인화시켜 ‘물속의 서시’로 부르며 사랑했다.
시어(鰣魚)를 워낙 좋아했던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제사상에는 항상 시어가 올랐다. 명나라가 수도를 남경에서 북경으로 옮긴 후에도 주원장의 제사상에는 시어가 빠지지 않았다. 양자강이 흐르는 강남에서 북경의 자금성까지는 거리가 약 1300킬로미터로 3000리가 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말을 달려 이틀 안에 살아 있는 시어를 실어 날랐다. 시어를 운송할 때, 올라가는 길목 15킬로미터마다 대형 수족관을 만들어 놓은 후 낮에는 깃발을 꽂고 밤에는 불을 피워 위치를 알려가며 시어를 운송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북경에 도착을 한 시어는 운송 도중에 죽거나 신선도가 떨어졌다. 실제로 선도를 유지한 시어는 1천 마리 중 서너 마리에 불과했다. 이중 멀쩡한 것은 제사상에 오르고 상한 것은 대신들에게 하사했다. 강남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상한 준치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했지만 강남 출신의 신하는 버렸다고 한다. ‘썩어도 준치’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옛날 옛적에, 사람들이 맛도 좋고 가시가 없는 준치만 먹게 되자, 준치 일족은 멸족의 위기에 빠졌다. 용왕이 모든 물고기들을 모아 놓고 준치 일족의 멸족지환(滅族之患)에 놓여 대책을 의논했다. 결과 준치에게 가시가 많도록 해 주자는 의견이 선정되었다. 용왕은 모든 물고기에게 자신의 가시 한 개씩을 뽑아 준치 몸에 꽂도록 하였다. 너무 많이 꽂아 아픔을 견디다 못한 준치가 달아났다. 달아나는데도 뒤쫓아 가면서 가시를 꽂아서, 꽁지 부근에도 가시가 많다. 우리의 선조들은 시어다골(鰣魚多骨)이란 사자성어를 만들어, 출세한 친구나 친지에게 시어를 축하선물로 보냈다. 잔가시가 많은 준치를 맛이 있다고 탐하다가는 목에 가시가 걸린다. 권력이나 명예, 재물도 너무 탐하면 가시가 목에 걸리니 조심하라는 교훈이 함의되어 있다.
정치의 계절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을 위한다며 개혁을 주장하지만 실제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가시도 없는 가짜 준치들이 토해내는 현란한 말 속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다. 거짓을 진실로 포장해 선동을 하고 있지만 부패한 냄새까지 가릴 수는 없다. 어족의 진어(眞魚)가 아닌 정치판의 진짜가 나타나서, 썩어도 준치라는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 대선에서 승리를 한 당선자에게 시어다골(鰣魚多骨)이라는 사자성어를 선물하고 싶다.
고영표 장로 (의정부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