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송구영신(送舊迎新)을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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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동생이 형에게 묻습니다. “형, 내일은 언제 와?” 형이 친절하게 일러줍니다. “응, 하룻밤 자면 와.” 하룻밤 자고 난 동생이 묻습니다. “형, 오늘이 내일이야?” 그러자 잠시 생각하던 형이 심각하게 그럽니다. “동생아, 내일은 없다!”

막연히 내일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을 기다립니다. 왜 그럴까요? 송구, 보내버리고픈 게 있습니다. 벗어나고픈 게 있습니다. 2021년을 살면서 그 고달팠던 것들, 그 애달팠던 것들, 속앓이하고, 힘들었던 것들, 다 보내버리고 싶습니다. 정말 송구(送舊)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송구를 말하는데, 영구가 생각납니다. 한때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던 코미디 속의 영구가 생각납니다. ‘영구 없다~’ 하며 얼굴을 숨겼다 다시 그 얼굴을 보여주는 그런 장면이 생각납니다. 영구는 정말 없는 걸까요? 송구는 정말 가버린 걸까요? 정말 우리는 영신, 새로운 것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전도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전 1:9-10) 세상에 새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영신, 새로운 것을 맞이하겠다고 희망을 품는 겁니까? 

새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마음이 예전의 그 상태, 그 모습 그대로라면 그 어떠한 것을 만나고, 갖다 주어도 그게 그겁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롭게 되면 모든 것은 새로운 겁니다. 어려운 병으로 앓다가 새 삶을 얻고 병원 문을 나서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이, 만물이 새롭습니다. 평생 보아온 식구들의 얼굴조차 새롭습니다. 눈물을 글썽이며 은혜를 받고 나면 목사님이 새롭고, 장로님이 새롭고, 모든 교우들이 그토록 사랑스럽고 새로울 수 없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합시다. 그 마음 그대로 갖고 새로운 해를 맞이해 봐야 별 볼 일 없습니다. 

더욱이 성도는 마음을 넘어서 믿음을 새롭게 합시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새롭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하셨답니다. 과거가 아름답고, 내일이 아름답기보다 현재, 지금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답니다. 지금 힘들어 죽겠는데요? 그래도 믿읍시다. 아름답게 하셨답니다. 지금의 이 아픔, 불안, 고달픔이 끝이 아니란 거겠죠. 그러면서 하나님은 일의 시종을 우리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그래서 그러셨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우리는 목자를 믿고 따라가는 겁니다.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송구든 영신이든 우리는 알지 못하는 시간 속에서 분명한 거 하나, 나의 목자는 선한 목자이시며, 그 목자를 따라가면 모든 것이 합력되어 내게 선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가는 겁니다. 송구영신, 분명합니다. 송구를 하든 영신을 하든 나의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라, 그것도 바싹 붙어서 갑시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의 새해가 열릴 겁니다.

양의섭 목사

<왕십리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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