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달란트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들 (312) 아브라함 링컨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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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빈민 변호사였다. 많은 수모를 당했다. 미국도 귀족계급이 출세하는 나라였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링컨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미국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링컨을 공천한 공화당이 “그들의 지성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조롱받았지만 1860년 11월 6일 미국 국민은 링컨을 선택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성공하므로 미합중국이 세계 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은 링컨을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매년 1위에 올리고 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기까지 가난했으나 많은 책을 읽었으며, 자기와 다른 주장의 사람들과 수없이 토론했다. 그 중에서도 스티븐 더글러스와의 대결은 치열했다.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항복함으로 남북전쟁이 끝났다. 남북전쟁의 승리도 <하나님의 승리>로 인정했다.

링컨은 1632년 일리노이 주 의회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여 첫 정치 경험을 했다.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노련한 정치가 스티븐 더글러스 상원의원과 경쟁했다. 이때 논쟁 주제는 노예제도로서 당시 링컨은 “분열된 집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연설로 노예제도로 대립하던 미국인들의 단결을 호소하였다. “노예제도는 악의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때 더글러스와의 논쟁은 유명했다. 더글러스는 미국 각 주와 주 시민들이 노예제도를 바로 정해야 한다는 자치권을 강조했다. 

링컨은 인간이 평등하므로 흑인을 노예화할 수 없다고 했다. 링컨은 낙선했지만 일곱 번에 걸친 공개 토론과 연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 후 2년 동안 링컨은 전국을 돌며 노예제도 폐지와 연방탈퇴 등의 정치적 사안을 연설했다. 결국 186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민주당 계열 신문들은 “삼류 서부 변호사로 무식하게 연설하는 사류 웅변가를 공천한 공화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었다.”고 했다.

링컨의 아버지는 제화공이었다. 귀족들은 신분이 낮은 제화공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못마땅했다. 약점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링컨이 취임 연설을 하려고 의회에 도착했을 때 한 늙은 의원이 “링컨 씨! 당신의 아버지는 한때 내 구두를 만드는 사람이었소. 그런 형편없는 신분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요.” 링컨은 조금도 불쾌해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취임 연설 전에 아버지를 상기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버지는 구두의 예술가였지요. 혹시 아버지가 만든 구두에 문제가 생기면 내게 즉시 말씀하십시오. 제가 잘 수선해 드리지요.”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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