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자신은 알지도 못하지만 부모들은 기쁨 속에서 여러 가지 즐겁고 행복한 기대들을 많이 한다. 처음으로는 언제 웃는가, 그러다가 기어가면 이제는 빨리 서야 한다고 보채면서 걷기를 기대하기도 또는 ‘엄마’ 소리를 하면 이제부터는 대화를 나누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 아기는 점점 성장하면서 학교를 들어가게 된다. 그런 중에 어느덧 인생이란 것은 계속되는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곧 깨우치게 된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때부터 중·고등학교를 필두로 대학 그러면서 하나의 고개를 넘으면 또 다른 인생의 고비가 기다리는 것이다. 1965년 12월 22일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는 매우 뜻깊은 날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학교 4학년의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교실 문을 나서면서 허공에 대고 ‘이젠 모든 것이 끝났다’라고 커다랗게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가까웠던 친구들과 학교 앞에 있는 식당에 모여 우리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우선은 서로를 축하하며 송별연을 가졌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면서 이제는 지긋지긋한 시험지옥에서 벗어나 정말 편안하고 멋진 세상만 펼쳐질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세상을 모르는 착각이라고 깨닫기에는 정말 짧은 시간이면 족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군대에 가게 되었다. 한국의 남아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치러야 하는 국방의 의무이기에 두렵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군대생활에 익숙해가면서는 생활은 편하지만 시간이 너무나 늦게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인생은 기다리는 것이라고 되뇌면서 그리고 국방부 시계도 분명하고 정확하게 흐른다면서 제대를 고대했다. 그러나 김신조를 포함한 무장공비 사건이 발생하여 전군에 6개월의 전역 연기가 발표되면서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곱씹으면서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러면서 기다림이란 것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람에 따라 사는 방식과 걸어가는 길이 다르지만, 모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숱한 고난을 겪으며 이를 해결하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또한 때로는 좌절을 하기도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면 곧 이어서 새로운 문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런 일이 꾸준하게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지혜 중 하나는 이런 기다림을 어떻게 소화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며,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이어지고 있다. 흐르는 시간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이를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이는 고문 기구 같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서 기다리는 사람과 편안한 걸상에 앉아 즐거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며 기다리는 사람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또한 기다림의 끝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는 반드시 언젠가는 나에게 닥친다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비록 마지막 기다림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든지 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마음의 준비를 갖는 생활자세가 요구된다.
내가 흘려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도망쳐 온 것도 아니지만 어느덧 세월은 정해진 궤적(軌跡)에 따라 어김없이 흘러갔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인생을 정리하고 이생의 마지막 기다림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