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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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히테는 서양 철학자들 중에서 자아를 가장 강조한 사람이다. “독일 군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과 저서를 남긴 그는 말하기를 “자아의 본질은 무한한 활동이고 정복이다”라고 하였다. 피히테는 칸트의 제자이지만 자아의 실천적 활동을 누구보다도 역설한 주의주의의 철학자다. 인간의 정신활동에서 지성을 강조하는 것이 주지주의이고, 감성을 강조하는 것이 주정주의이고,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 주의주의이다.

그는 자아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무한하고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활동”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능동적 활동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피히테는 바로 이렇게 행동적 자아를 누구보다 강조한 철학자였다.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세계를 조용히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활동이고 실천이다. 우리는 적극적 활동으로 사회를 개조하고 역사를 건설하고 문명을 창조해야 한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인간을 가리켜서 개조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피히테의 사상과 의미가 같다. 적극적 활동을 통해서 인간은 가난을 정복하고, 질병을 정복하고, 악과 부정, 편견, 불행, 산과 바다를 정복하면서 자유와 정의와 번영과 행복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존재이다.

활동이란 말은 문자 그대로 살아서 움직인다는 뜻이다. 생명의 본질은 활동이다. 죽은 존재는 조용하고 말이 없다. 살아 있는 자만이 움직이고 전진하고 창조한다. 동시에 움직인다는 것은 성장을 의미한다. 아기들이 태어난 후 성장기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인다. 그러나  성장이 멈춘 어르신들은 종일 집에서 움직이지 않고 안방을 지킨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향해서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6-8)고 하였다.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 가서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권한다.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는 말은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만큼 게으른 사람은 개미만도 못한 존재라는 것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가?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서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인간다움의 의미가 있다. 

솔로몬은 또한 잠언 10:4에서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을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고 하였고, 잠언 13:4에서는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고 하였다. 잠언의 주제는 지혜인데 솔로몬은 지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지혜는 게으르지 않는 것이며 부지런한 마음이라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지혜가 없는 자이다. 

그런 맥락에서 피히테는 “자아의 본질은 무한한 활동이고 정복이다”라고 한 것이다. 인간의 지혜는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며, 지혜로운 자아는 활동하고 정복하는 존재이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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