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성경이 본래 쓰여진 원어로 읽는 사람은 전문적인 학자 외에는 거의 없다. 모두 번역된 성경을 읽는다. 따라서 성경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고, 성경의 역사는 곧 성경 번역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늘날 신구약 성경전서는 7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성경의 일부(예를 들어 신약의 복음서)라도 번역된 언어의 수를 합치면 거의 3500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매년 50개 이상의 희귀언어로 새로운 번역이 나오고 있다. 우리 민족도 140년 전까지는 성경을 우리말로 읽어본 사람이 없었다. 1882년 존 로스 목사가 누가복음을 처음으로 번역했고, 1898년 알렉산더 피터스가 최초로 구약의 시편을 번역했다. (오늘날 전화로 휩싸인 우크라이나는 최초로 구약을 한글로 번역한 피터스 목사가 태어난 고향이다.)
그러면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이 역사상 최초로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은 언제 어떤 언어였을까? 그것은 주전 270년대 희랍 시대에 당시 이집트의 왕도(王都)였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이 최초의 번역성경이다. 이를 ‘70인역’(Septuagint)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모두 72명의 장로들이 모여서 번역했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70인역’을 번역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알려주는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자료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이다. 이 자료는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대인 지도자 아리스테아스(Aristeas)가 자기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형태로 되어있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내용을 소개하기 전, 먼저 주전 200년대 초 알렉산드리아에 세워진 당시 최대의 도서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바벨론에서 열병으로 갑자기 죽은 후 (주전 323년), 그의 휘하의 장군들 사이에서 치열한 유혈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결국 알렉산더가 정복한 광대한 영토는 장군들 사이에 셋으로 분열되었다. 이집트 지역을 차지한 인물은 토레미(Ptolemy) 장군이었다. 그는 알렉산더가 세운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왕국의 수도로 삼고, 약 300년간 계속된 ‘토레미 왕조’의 시조가 되었다. 토레미 왕은 알렉산드리아를 정치와 경제의 중심도시일 뿐만 아니라, 희랍 문명과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 계획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그곳에 거대한 도서관을 건립했다. 그리고 당대까지 쓰여진 책들과 자료들로 도서관을 채웠다. 수십만 권의 책과 두루마리(scroll)를 소장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세계에서 최대의 도서관으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많은 학자, 석학들이 알렉산드리아로 모여들었다.
사족: 2002년 알렉산드리아에 거대한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초현대식 건물에 2만 평 이상이 되는 웅대한 도서관이다. 건물의 크기뿐만 아니라,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기록된 고대 문헌, 기록들을 ‘디지털화’한 자료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연구도서관이다. 현대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과거 토레미 왕이 그곳에 세웠던 도서관의 전통과 영광을 재현하는 의미로, UNESCO가 주동이 되어 이집트 정부와 힘을 합쳐 세운 것으로 오늘날 이집트의 세계적 명소가 되고 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