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바울은 언제 회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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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특히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주님을 만난 사건은 그의 삶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나누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교회를 박해했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복음을 전파하며 교회를 섬겼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의 일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회심 사건은 바울이 몇 살 때 일어난 일인가? 요즘 나이로 볼 때 한창 젊다고 할 수 있는 삼십 대 또는 사십 대에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중후한 오십 대에 일어난 일인가? 그리고 바울이 회심할 당시 교회는 생겨난 지 얼마나 되었을 때였는가? 

성경에서 바울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몇 가지가 있다. 사도행전 7장에 따르면 스데반이 순교할 때 바울은 그 장소에 있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행 7:58). 이 구절에서 ‘청년’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원어는 ‘네아니아스’라는 단어다. 또한 주후 52년 경 기록한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자신을 ‘프레스뷔테스’라고 불렀다(몬9절). 이 단어를 개역개정은 “나이가 많은”, 새번역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라고 번역했다. 당시에 히포크라테스의 이름으로 회람되던 문서에 의하면, 22세-28세 사람을 ‘네아니스코스’로 불렀고, 50세-56세 남성을 ‘프레스뷔테스’라고 불렀다. 이에 따르면 바울은 50세-56세 사이에 빌레몬서를 기록한 것이 된다. 한편 고대 그리스의 다른 출처에 의하면, 22세-28세의 네아니스코스 다음으로 29세-35세 남성을 ‘네아니아스’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사도행전 7:58에서 청년이라고 번역한 네아니아스인 바울의 실제 나이는 29세-35세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나이는 십자가 처형 이후 부활하고 승천하셨을 때의 예수님과 거의 같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델피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서 갈리오 비문(Gallio Inscription)이란 것이 발굴되었다. 갈리오 비문은 델피에서 발견되었으므로 델피 비문(Delphi Inscription)이라고도 한다. 갈리오 비문은 바울의 연대기 설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비문에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총독 갈리오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갈리오는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갈리오는 주후 51년부터 52년 사이에 아가야의 총독이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도 등장한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행 18:12). 이때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이었다. 이 여행 중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했을 때가 바로 주후 51년부터 52년 사이가 되는 것이다. 고린도는 아테네와 함께 아가야 지방의 주요 도시였다. 마침 이 시기에 일년 간 아가야 지방의 총독이었던 갈리오가 바울을 만났으므로 이 연도를 기준으로 바울의 연대기를 설정할 수 있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직전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바 있다(행 15장).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체류한 후(행 18:11) 총독 갈리오를 만나게 되었으므로, 예루살렘 교회 방문은 주후 50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방문이 14년 만에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한 것이라고 말한다(갈 2:1). 14년 전, 그러니까 주후 36년에 바울은 이미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갈 1:18-20). 그런데 주후 36년에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는 다메섹에서 3년 간 체류했고, 긴급한 일이 발생해 광주리를 타고 탈출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다메섹을 가던 도중에 주님을 만나서 회심하였고, 교회 박해자가 아닌 기독교 신앙인으로 다메섹에 입성했었다. 결국 다메섹 체류 3년을 고려하면 바울의 회심연도는 33년이 된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을 부르셨던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심히 박해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갈 1:13-14). 그는 그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정작 그가 할 일은 따로 있었다. 교회를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섬기는 일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모태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셨다고 말한다(갈 1:15).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실 때, 바울 역시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다. 거의 같은 연배의 바울은 예수님이 자라거나 사역을 하실 때 자신이 할 바를 알지 못했으나, 바울을 사용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지친 한국교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바울과 같은 일꾼들이 등장하여 새로운 역사를 힘차게 만들어나가기를 소망한다. 

심우진 교수

<서울장신대학교 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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