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작가 채수정 장로의 ‘하늘의 별이 되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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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에서 대한민국을 건진 영웅 백선엽 장군

2년 전 여름장마비가 장대비로 쏟아지는 세종로에 초라한 빈소가 차려졌다.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달려 나온 눈앞의 광경은 눈을 의심케 했다. 아니 아무리 세상이 변했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을까? 6.25전쟁의 최고 영웅이라 할 노장군의 빈소는 찾기 힘들 정도로 초라하게 마련되어 노병들이 안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6.25때 9살이었으니 그 시대를 잘 안다하면 옳은 말은 아니겠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을 만났고 아버지를 북괴군의 손에 어이없이 빼앗기고 전쟁납북자 유족이라는 명패만 남았다. 이런 연유로 6.25전쟁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이다. 그때는 어린 것이 무엇을 알랴만 서울 장안에 도배하듯 우리나라 지도를 붙여놓고 날마다 빨간색을 칠해 나가며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면서 우리를 불러 모아 그들의 노래를 가르치고 목이 터져라 부르게 했던 날들을 어찌 잊으랴.

반동분자놈의 에미나이라며 공기돌 놀이하는 계집애의 머리 꼬랑이를 잡아당기던 내무서원인지 괴뢰군인지의 함경도 사투리는 지금도 모골을 송연케 한다. 아버지를 끌고 가던 그 사내의 말투도 똑같았다. 지금도 함경도 사투리를 들으면 오싹해지건만 함흥냉면은 정신없이 잘 먹으니 그 심사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나로서야 일면식도 없지만 백선엽 장군의 부음을 듣고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동안은 어떻게 감사의 인사를 할 기회가 없었지만 가시는 길에 꽃 한 송이는 놓아드려야 발 뻗고 잘 것 같았다. 지겹도록 길고 긴 시간 동안 진을 치고 있는 데모 군중의 천막보다 작고 초라한 천막은 비닐에 의지하여 장대비를 겨우 가려주며 숨차게 서 있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분간이 안가서 보는 이는 모르겠지만 난 통곡하고 서 있었다.

힘없는 늙은 아낙이 위대한 영웅을 보내드리는 길에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1950년 7월, 8월, 김일성이 서울을 다녀가고 우리나라 지도는 날마다 빨간색을 넓혀 나갈 때 낙동강이라는 말을 들었고 의용군이라는 것에 끌려가 젊은이들이 끝없이 죽어간다고도 했고 집안 오빠도 피난가다가 잡혀 갔는데 소식이 없다했다. 훗날 집안에서는 그 오빠가 틀림없이 낙동강 전투에서 괴뢰군의 의용군으로 개죽음을 했을 것이라고 슬퍼했다.

이런 피나는 아픔을 요즘 세대들은 너무 잘 모르고 이상하게 가르쳤는지 어쨌는지 괴상한 소리들까지 하는 마당에 고 백선엽 장군 기념사업회가 ‘하늘의 별이 되어’라는 실록 장편소설을 펴냈다. 소설가 채수정의 이 소설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다리를 다쳐 요양 중이라 어차피 누워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전쟁 소설이라 좀 지루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노장군 백선엽의 100세 생일잔치를 미8군이 주최해주는 장면에서 시작된 소설은 백선엽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성장과정과 6.25전쟁의 고비마다를 그려나가고 있는 대하 장편소설이다. 백 장군의 회고록과 여러 저서를 비롯한 방대한 자료를 얼마나 읽고 또 읽었으면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듯이 글을 풀어 가고 있다. 전혀 지루하지 않고 계속 읽을 수밖에 없이 만드는 원동력이 무얼까?

아무래도 진솔한 표현과 가감 없는 진실의 토로를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구성과 표현력 덕인 것 같다. 역사에서만 들었던 다부동 전투의 신화에 가까운 전승 이야기는 조지훈 교수의 특강 장면을 삽입함으로서 그 밀도를 폭발적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승전의 기록뿐 아니라 운산 전투의 뼈저린 후퇴의 기록도 전사 그대로 진술하고 있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는 유명한 한마디로 다부동에서 이나라 국운을 건져낸 백선엽 장군, 그때 그 절체절명의 순간 대세에 꺾여 버렸으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백장군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 후로도 고비마다 기도한다.

한국군의 현대화와 발전을 위한 외교적 노력도 자신이 한대로 가감 없이 써내려가서 중요한 역사기록의 역할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싸움꾼 백선엽 만이 아닌 탁월한 국가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부각시키고 있다. 작가 채수정은 자신이 ROTC 3기로 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 그 전문성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백선엽은 군 행정면에서 우리 군의 그 시절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던 크고 작은 생계형 비리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들의 입장을 대신 변명하면서 감싸주는 지휘관의 고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혼자 옳은 것처럼 매도하는 모양새 보다 얼마나 인간적이고 공감이 갔는지 모른다.

30살에 대장이 되고 40살에 흔쾌히 전역하는 군인다운 군인의 모습을 보면서 더위도 못 느낄 지경이었다. 여기 다 말 할 수 없지만 전투의 승전 기록만이 아닌 우리나라 현대사가 실록처럼 펼쳐진 내용들을 심상하게 그려나간 채수정 작가의 필법이 우리를 분노가 아닌 감동에 젖게 만든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거물 지도자들과의 일들도 스스럼없이 표현되어 있는 부분에 독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의 삶과 전쟁, 군인으로서의 생활 전반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힘을 실어준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숙연해지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복음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의지한 백선엽은 승리의 장군이 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장로인 채수정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집필한 ‘하늘의 별이 되어’는 노 장군의 전역식을 끝으로 그날 밤 어머니를 끌어안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2년 전 세종로에서 통곡하던 한 아낙의 설움을 조금이나마 잠재워준 이번 백선엽기념사업회의 결단에 찬 역작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온 국민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오경자 장로
<평론가, 수필가,
국제펜 한국본부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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