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순전하고 온전함이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의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새로운 철학 사조나 유명한 사상가의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감성을 자극해 심리적인 방법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감성주의는 지적인 내용이 빠진 감정이다. 부흥 강사가 감성을 자극해 설교를 위주로 하면 안 된다. 감성주의는 통제력이 없다. 신앙의 균형을 잃게 된다. 진정한 감성은 진리에서 나온다. 참된 지식에서 나온다. 세상적인 감성주의는 지성과 진리와 단절되어 있다. 때문에 감성주의는 소모적이다. 불균형의 신앙이다.
진정한 감성은 진리의 결과에서 감동과 함께 나와야 한다. 성경은 감성으로 가득하다. 인간의 감성적인 면을 중요하게 여긴다. 시편에는 감성의 아름다운 표현이 많다. 기쁨을 표현하는 시편이 많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극소수였다.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멸시 받으며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사회적인 지위도 낮았다. 노예들도 많았다. 그러나 신분 계층이 낮았던 그들은 순전한 믿음과 기쁨으로 세상을 정복했다. 순전한 기쁨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다. 환란을 소망 중에 참고 견디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뻐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구원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다. 영원한 즐거움이다. 마음속에 충만한 기쁨이 있다. 사람의 기질(氣質)은 각각 달라도 구원의 기쁨은 같다. 신비스러운 일이다.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기쁨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기독교는 전인(全人)을 다룬다. 기독교는 기질(氣質)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 기질은 그대로 남는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기질의 지배를 받지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기질을 다스린다. 위로부터 받은 지혜와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님께서는 감성과 지혜와 지식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하신다. 각자의 기질대로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다. 신약 성경을 읽으면 대체로 그 기록자를 짐작 유추해 볼 수 있다. 사도 바울, 베드로, 요한, 야고보 등 문체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시편과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에도 표현과 묘사의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영(靈)에 의해 각성(覺醒)이 충만해 무아지경(無我之境)에 사로잡혀 기록했다. 한 성령의 다스림을 받았으나 성령께서는 이들의 기질이나 개성을 살려 주셨다. 문체에 따라서도 성경을 읽는 즐거움이 또 배가(倍加)된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님 안에는 눈물로도 표현 못할 심오한 감정이 있다. 감정이 너무 북받쳐 눈물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감동이 깊어 말을 잃기도 한다. 거룩한 감정은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5:19) “예언을 멸시 하지 말고”(살전5:20)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7)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성경 말씀 어느 한 구절에만 매몰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단(異端)은 바로 이런 경우에 발생한다. 말씀은 말씀으로 풀어야 한다. 신비주의, 은사주의에만 빠지는 것도 균형을 잃은 신앙이다. 신앙의 가장 소중한 모습은 균형과 조화이다. 지식 중심주의에만 빠지면 성령의 은사가 부족하게 된다. 신앙의 정서가 건조해진다. 예배는 찬양, 설교, 기도, 헌금, 축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누구나 세상에 사는 동안 시험과 시련은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죄의 욕망 속에서 태어난다. 원의(原義, original Innocence)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앞서 간 신앙의 선배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시험을 당했을 때 이를 이용해 영적인 성장을 도모했다. 승리의 비결은 진정한 겸손과 인내뿐이다. 정욕을 위하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는 것이다. 시험이 닥쳤을 때 자신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된다. 낙망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우리의 삶은 온통 역경(逆境)으로 가득 차 있다. 시련과 아픔과 슬픔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이 인생의 본질이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게 한다. 세상의 삶은 나그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정신을 차리게 된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세상 떠날 때까지 순례의 길을 가는 데는 균형과 조화가 있는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험을 이기는 길이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더 가지려는 탐욕을 버려야 한다. 더 낮은 위치에 처하길 힘써야 한다. 매사에 언제나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기를 소원해야 한다. 균형 잡힌 신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여기에 순결한 기쁨과 감사가 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