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삶의 흔적(痕跡)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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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여자중·고등학교 교장 임기 마치시고, 홍천여자고등학교 교장님으로 부임하신 후 시할머님께서 치매 중증환자가 되셔서 시어머니께서 3년 동안을 혼자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 

아이들 데리고 시부모님 뵈러 갔을 때 일이다. 예전에는 일회용 기저귀가 없어 시어머님이 직접 군 담요를 잘라서 시할머니의 기저귀를 만드셔서 사용하셨는데 집에 우물이 없어 강에 가서 빨아야 했다. 나는 시어머님 몰래 기저귀 모아놓은 것을 가지고 강으로 가서 빨고 있었다.

시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시고 오셨는지 ‘이 일은 내가 할 일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집으로 들어가라고 막무가내로 말리셔서 할 수 없이 일어나 집으로 왔었다. 나는 잠시나마 시어머님을 도와 드리려고 했는데 시어머님은 나에게 더러운 것을 만지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의 마음이셨다.

시할머님 세상 떠나신 후! 홍천여자고등학교 교장 임기를 마치시고 화천실업중·고등학교 교장님으로 가셔서 사시면서 두 내외분이 교회도 열심히 나가셨고 집사직도 받으셨다. 시아버님께서는 학교 재직 중(1965. 4. 11)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셨다. 시아버님이 떠나시고 난 후 시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살면서 신앙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다.

묵동제일교회에서 시어머니께서 권사직을 받으시고 목사님을 도와 심방도 많이 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날에도 목사님과 심방을 하시고 다음날 새벽 5시경 기도하시던 시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분이셨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시어머님은 존경스러운 분이시며 본받고 싶었던 분이셨다. 그런 까닭에 나는 명동에 있는 덕명의숙 노인대학에서 [고부간의 갈등]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나, 교회에서 여전도회 훈련시간에 강의할 때, 그리고 이화여대 다락방에서 자비량 농촌 전도 때에도 시어머님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시부모님의 가르침으로 인해 자녀들 양육에 큰 힘이 되었었다. 나로서는 어려운 훈련이었으나 잘 견뎠기 때문에 시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었고, 장손의 아내 역할도 할 수 있었고, 교회에서도 장로의 가정으로 본이 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한 것이 아닌가! 22살 철없는 며느리를 그동안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 주신 시부모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린다.

남편 장로님과의 삶

장로님이 육군사관학교 교수 생활을 하며 딸 둘을 더 낳아서 4남매를 육사 관사에서 키웠다. 장로님이 29세에 춘천제일교회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기 때문에 춘천제일교회도 섬기며, 육사교회 장로님으로 25년이란 세월을 생도 복음화를 위해 봉사를 했다.

군인 봉급으로 장로의 직분을 감당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때에 따라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 은혜로 우리 가족은 기쁨으로 봉사를 했었다. 장로님의 교수 정년이 되어 대령으로 예편하시고, 수도공고 교장님으로 5년 교직 생활하시고 정년 은퇴를 하셨으며 그 후 장로신보사 편집국장으로 10년을 일하셨다.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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