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구약의 혼혈결혼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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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룻기는 효심 많은 모압 여인 룻에 관한 미담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남편이 죽어 젊은 과부가 된 룻은 자기 고향 땅 모압을 떠나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갔다. 룻은 밭에 나가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했다. 그러다가 죽은 남편의 가까운 친족으로 부유한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았다. 룻의 3대 후손 중에 다윗 왕도 배출해 모든 것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가족사가 룻기이다. 그런데 구약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룻기는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사실 룻기와 같은 책이 구약 안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놀랍다.

이미 논의한 바 있으나, 신명기 23장에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씀이 있다. (신 23:3) 여호와의 ‘총회’(congregation, assembly)라고 번역해 마치 공식 회의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그 의미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임,’ 즉 ‘이스라엘 공동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영원히 이들과 결혼 관계도 맺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규정은 두말할 것도 없이 암몬과 모압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 차별과 배타주의를 드러낸다.

주전 450년대 바사(=페르샤) 시대, 유다 지역에 총독으로 부임했던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바로 이 신명기 말씀을 낭독해주고, 암몬 사람, 모압 사람 등 이방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을 ‘책망하고 저주하고 때리고 머리털을 뽑으며’ 혼혈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게 했다.(느 13장)

또한, 느헤미야보다 약 10여 년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활동했던 위대한 지도자 에스라가 있었다. 에스라는 아론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최고 명문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인물이었다. 그는 또한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대학자였다. 그는 페르샤의 아닥사스다 왕의 지원을 받으며 귀향민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때 그는 중요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왔다. ‘모세의 율법책’이었다. (느 8:1) 오늘날 ‘모세5경’으로 부르는 구약의 핵심되는 책이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5경’의 편집을 완성했고,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갈 때 가지고 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구약학계의 정설이다.)

에스라도 이방인들과 혼혈결혼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단호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에스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이방 족속들과 혼혈결혼이 만연된 것을 알고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는 등 극단적 행동까지 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스 9:1-6) 에스라도 이방인들과 혼혈결혼을 얼마나 심각한 죄로 여겼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스라는 이방인 아내들을 쫓아내고 이혼시키는 일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스 10:19) 이방 족속과 결혼을 죄악시하던 시각에서 보면 모압 여인이 주인공이 되는 룻기는 분명히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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