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보통 ‘까치’는 길조(吉鳥)라고 해서 좋아하지만, ‘까마귀’는 흉조(凶鳥)라고 여겨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까마귀는 울음소리도 사뭇 음침한 느낌을 주는 데다 시체를 먹는 습성까지 있어서, “까마귀의 밥이 되었다”라고 하면 “죽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라면서 동네에서 놀다가 까마귀가 “까악까악”하고 울며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한결같이 미리 약속이나 한 듯 “퉤-퉤-퉤”하고 세 번에 걸쳐서 침을 뱉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정(不淨)한 것을 보았을 때 액땜을 하는 일종의 미신 같은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까마귀에게도 사람들이 꼭 본받아야 할 습성이 있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알에서 깨어나 부화(孵化)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줍니다. 하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그때부터는 먹이 사냥이 힘에 부치는 어미를 위해서 자식이 힘을 다하여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이렇게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의 효성을 뜻하는 말을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 합니다. “되돌릴 반(反), 먹일 포(哺), 갈지(之), 효도 효(孝)”인데 여기서 한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되돌려 먹이는 효도”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의 깊은 의미는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도”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가 길러 준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지요.
옛 우리 선조들의 시조(時調) 중에는 까마귀를 경멸하는 시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까마귀를 옹호하는 그런 시조도 있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파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이 시는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어머니가 아들 포은(圃隱)에게 이성계 부자의 더러운 권력다툼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으로 지은 시조라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까마귀는 권력에 탐닉하여 음모와 살생을 일삼는 정상배(政商輩)를 의미하며, 백로는 선비의 깨끗한 지조(志操)를 가리킵니다.
위의 글이 까마귀를 천박한 새로 여긴 글이라면 다음의 시조는 까마귀에게 역성을 들어 주는 노래입니다.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의 문신 이직(李稷, 1362~ 1431)의 시조입니다.
중국 진나라 시절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까마귀의 습성을 비유한 일화가 있습니다. 진나라 왕인 무제(武帝)가 덕망 있고 학식이 깊은 ‘이밀(李密)’이라는 선비를 무제의 아들인 태자의 선생으로 임명하려하자 이밀은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가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살 때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는데, 그 할머니가 당시 96세가 되시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봉양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까마귀가 어미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봉양하게 해주시기를 바라옵니다.”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왕은 이밀의 효심에 감동하여 그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자식이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을 이르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은 여러 가지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가족구조가 해체되고 핵가족을 양산(量産)하면서 가족관계에 균열(龜裂)이 생기고 효사상이 해이(解弛)해져 가고 있습니다.
16세기의 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십계명 중,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구절을 설명하면서 “자기를 낳아준 분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은 인생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제5계명의 요점이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우신 부모님을 존경하며 경의와 순종과 감사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역설(力說)하였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인간들을 향하여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고 배우라”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오늘날 부모의 은혜를 망각하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하찮은 동물인 ‘까마귀’에게서 배우라”고 타일러주시는 음성이 우리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