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 때, 서울 종로구 계동(桂洞)에 있는 ‘중앙중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간 일이 있었다. 교생실습생들이 단체로 교장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갔는데 교장실의 바로 정면에는 깔끔한 해서체(楷書體)로 된 족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거기에는 ‘學不厭敎不倦(학불염교불권)’이라는 한자 여섯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인사를 마치고 교장선생님께 글의 내용을 여쭈어보았더니 논어(論語)에 나오는 글귀로 “배우기를 싫어하지 아니하며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 한다”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집에 와서 옥편을 찾아보았더니 ‘염(厭)’은 ‘싫을 염’이고 ‘권(倦)’은 ‘게으를 권’이었다. ‘배우기[學]에 염증(厭症)을 내지 아니하며, 가르치기[敎]에 권태(倦怠)로움을 느끼지 아니 한다’는 말이니 어려서부터 교사를 지망해온 나에게 ‘좌우명(座右銘)’이 될 만한 문구라 여기고 읽고 또 읽고 그 뜻을 반복해서 되새겨 보았다. ‘좌우명’이란 말의 의미는 “옆자리에 놓아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를 뜻한다.
훗날 회갑이 되던 해에 우리학교 미술대학의 서예담당 외래교수에게 이 글귀를 부탁하여 여섯 글자의 글을 받아 족자를 만들어 내 방에 걸어놓고 방을 드나들면서 그 뜻을 새기며 지금까지 24, 5년째 소중히 간직해 오고 있다. 오늘 ‘신앙산책’의 글 끝에 덧붙인 사진의 글귀가 바로 그것이다. 어려서부터 장래의 희망이 ‘선생님’이었던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여 교직의 외길에 서서 40년의 세월을 대과(大過)없이 보냈으니 이 어찌 과분한 분복(分福)이 아니랴!
위에서 좌우명으로 삼은 글귀에서 ‘불염(不厭)’ 곧 “싫어하지 아니함”과 ‘불권(不倦)’ 곧 “게으르지 아니함”은 ‘이중부정(二重否定)’의 표현이므로 ‘긍정’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전자의 ‘싫어하지 아니함’은 ‘즐겨함’이요, 후자의 경우, ‘게으르지 아니함’은 ‘부지런함, 곧 성실함’의 의미가 된다.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시작한 1960년대 중반부터 이 좌우명의 뜻을 생각하면서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기독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에 착안(着眼)하게 되었다. 그 착안이란 교실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50분 수업 중에 5분”은 학생들에게 성경을 전하자는 다짐이었다. 말하자면 하늘이 내게 주신 ‘재능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특정 영어문장이나 특정 어귀나 단어를 설명하면서 영어 성경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혹은 영어 찬송가 가사를 예문으로 설명함으로써 은연중에 성경이 주는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곤 하였다.
예컨대 영어에 “so ~ that”의 구문이 나오면 “~해서 ~하다”라는 우리말 설명과 함께 “요한복음 3장 16절”을 칠판에 적어 내려간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예문은 내가 자주 인용하던 단골 메뉴였다. 고등학교 때, 미국 선교사에게서 배운 많은 영어찬송가의 가사도 아주 좋은 예문이 되므로 영어 예문의 자료는 곳곳에 산재(散在)해 있었다.
혹시 교과서에 고어(古語) 인칭대명사 “thee”(목적격 you)가 나오면 “Nearer my God to thee(내 주를 가까이 하게함은)”의 찬송에서 예문을 발췌한다.《킹제임즈 버전(King James Version)》에 나오는 ‘주기도문(마 6:9~13)’에는 다양한 고어 인칭대명사(thou-thy-thee-thine)가 나온다. “영문 주기도문”의 유인물을 나눠주고 전문을 암기하는 학생에게는 “칭찬의 상”을 주면 영어 학습은 물론, 복음전도의 효과도 거둘 수 있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된다. 평생 동안 이 부족한 종을 젊은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도구로 사용해주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감사, 또 감사를 드린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