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푸스(F Josephus, AD 37~100)는 유명한 이스라엘의 역사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사렛파 혹은 에비온파 그리스도인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의 사역과 순교, 복음서가 쓰여진 기사를 확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활동과 상황을 뒷받침해 준다.
AD 74년, 그리스도에 관한 마라(Mara)의 증언도 전해진다.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를 죽이고 그 벌로 기근과 역병에 시달렸다. 사모스인들은 피타고라스를 불태워 죽이고 한 시간 뒤에 바닷물에 뒤덮이지 않았는가?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고서 무슨 이득을 얻었는가? 그 순간부터 그들의 왕국이 그들에게서 멀리 떠나 버리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공의(公義)로 위 세 사람의 지혜에 보상을 해주셨다. 아테네인들은 가뭄으로 죽였고, 사모스인들은 손 쓸 틈도 없이 바다에 잠기게 했고, 유대인들은 자기 나라에서 파멸과 추방을 당해 사방 각처로 쫓겨났다.’ 마라의 국적과 지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페인 스미스(Payne Smith) 박사는 페르시아인으로 추정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제사장이자 군사령관이자 역사가였다. 예루살렘 전쟁 때는 군사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전쟁 중에 로마의 베스파시우스(Vespasianus) 사령관에게 포로가 되어 로마로 잡혀 갔다. 베스파시우스가 황제(AD 69~79 재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해 주었다. 이를 인연으로 귀족 대우를 받으며 <유대 고대사>, <유대 전쟁사>를 저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유대 민족에게는 배신자일 수 있지만 학자, 역사가로서는 탁월한 유대주의와 헬레니즘 문화의 전통을 종합하였다. 진실만을 추구하여 공정한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를 통해서 고대 유대사를 알게 한다.
유대교와 초기 그리스도교,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로마 제국 치하의 여러 민족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는 필수 역사서이다. 세상 창조와 아브라함과 이삭, 출애굽 역사, 모세의 죽음, 다윗과 아합, 유대민족의 포로기, 앗수르의 고레스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 마카베우스, 안티고누스, 헤롯 성전의 완성,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유대 초기 로마 총독까지를 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유대 전쟁사>는 베스파시우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Titus, 후에 황제가 됨, AD 79~80 재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 함락되기까지의 전쟁(AD 69~70)을 기술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을 만난 적도 없고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쓴 <유대 고대사>는 로마의 세속 세계와 유대의 종교적 유산을 연결해 준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예수님의 활동과 부활을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요세푸스의 증언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예수라는 사람이 활동했다. 그를 사람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는 참으로 특별한 활동을 했다.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그들은 기쁨으로 마음을 가득 채웠다. 예수는 그들을 기쁨으로 사랑했다. 그는 많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였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의 고발을 받아 들여 십자가에 처형했으나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는 선지자들의 예언한 대로 사흘 만에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다.”
참으로 경이롭고 신비한 증언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