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는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게다가 손이 떨리고 무릎까지 후들거렸다. 그것은 낚시바늘에 걸린 고기가 너무나 무거워 끌어내기에 힘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몹시도 흥분한 탓으로 그러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시간 남짓 견지를 풀었다 감았다 수없이 했는데도 입질이 없어서 이제는 걷어치울까 하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견지대가 휘청하고 휘었으니 숨이 턱에 차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무게로 해서는 월척이 틀림없어! 아니 이런 골짝 여울에서 월척을 낚다니!’ 지금껏 월척이라고는 낚아본 적이 없는 길수로서는 흥분의 도가니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무게는 대단한데 버들쩍대지를 않을까?’ 이놈은 어찌된 게 끌어당기긴 하면서도 끌려 오기만 하고 있으니 좀 석연치가 않았다.
길수의 머리 속으로 불현듯 헤밍웨이의 명작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엄청나게 큰 고기.
하마터면 배가 뒤집힐 뻔했던 큰 고기. 있는 힘을 다해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노인. 하기야 지금 걸린 고기를 그렇게까지 과장을 할 것은 못되지만 그러나 이러한 계곡 물에서 견지로 월척을 낚아 올린다는 것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극히 드문 일이 아닌가.
길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한발 한발 조심하면서 물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럴수록 무게는 더해가기만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물살이 센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힘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할아버지 큰게 잡혔어요? 큰 고기에요?” 어느새 모여 들었는지 손자 손녀 그리고 아범까지 앉고 서고 하여 제각기 떠들어 대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좀 큰놈인 것 같다.” 길수는 만일을 몰라 짐작하고 있는 크기는 말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님 엄청나게 큰 모양인데요. 견지대가 휘어진 것을 보니까요.” “글쎄 말이다.” 이때였다. 5미터쯤 되는 곳에서 한 뼘 크기의 은빛이 반짝 빛났다. “엇?” 길수는 움찔했다. 우선 끌려오는 고기가 아무리 크다해도 머리가 저렇게 크게 보일 리가 없고 더군다나 머리쪽은 은빛으로 보이는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시 고기 허리가 낚시에 꿰인 게 아닌가? 그래서 물의 저항 때문에 무거웠던 게 아닌가?’
“아버지 망을 드릴까요?” “글쎄 말이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온 신경이 곤두서서 목소리까지 들떠 있던게 지금은 딴판으로 축 가라앉은 소리로 변하고 말았다.
길수는 몸으로 견지대를 가리고 당겨오던 줄을 갑자기 늦추었다. 그렇게 하면 웬만한 고기들은 낚시바늘에서 빠져 달아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체면과 망신을 놓친 고기에다가 몽땅 얹어서 떠내려 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의치가 않았다. 여전히 그대로 고기는 낚시바늘에 걸려 있었다. “아버님 힘드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그럴 것 없다. 내가 아무래도 잘못 본 것 같다.”
“아버님 그러니까 입에 걸린 게 아니라 다른 데가 걸렸다 그 말씀이세요?” “그런 것 같아. 아마 등이 꿰였나봐.”
길수는 맥없이 웃었다. 아들도 웃었다. 길수는 ‘노인과 바다’를 떠올렸던 것이 쑥스러웠고 아들은 마음을 조이며 흥분했던 자신도 자신이지만 이보다도 엄청나게 큰고기인 줄로만 알고 잔뜩 기다리고 있는 꼬마들이 무슨 말인가 해서 큰 눈을 껌벅거리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번갈아 올려다 보고 있는 그 표정이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