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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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크리스챤 신문 및 대광학교 ③

“황 목사님만 있었으면…” 큰 아쉬움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자

기독교 문화 형성 위해 노력하신 분

세상살이 힘들수록 그리움 깊어

<새벗>의 운명이 이렇게 정간되어 가고 있는 이 즈음 편집장 이주연 형과 만나면 항상 되풀이하는 말이 있다. 다방 구석에서, 또는 노상에서 또는 어느 지붕 위에서 코카콜라 병마개를 빨아가며 하는 말이 있다.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으면…”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으면…”

7월 15일이면 목사님이 가신 지 1년, 그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이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더라면…” 하고 우리들의 형님 황 목사님을 아쉬워했던가!

내가 책임지고 있는 조그만 극단 ‘탈’을 이끌고 지방공연에 나서기로 했다. YMCA 성인부에 속해 있는 우리 극단은 교회와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연극을 통한 선교의 가능성과 예배의식의 향상을 실현해 보기 위해 지방공연 도정에 오르기로 했다.

순회 공연을 기획한 내게 밀려오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우리 단원들은 교인들이 아닌 연극인이다. 교인이라고 해도 지방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감당하기 어렵다. 둘째, 재정 문제. 셋째, 지방 교회의 연극에 대한 몰이해. 넷째, 다섯째… 문제는 허다하게 싸여 있다.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YMCA 김창렬 간사님과 해결하려고 노력하다가, 어두운 종로 거리를 걸으며 내가 중얼거린 말은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으면…”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으면…”

 목사님은 어린아이같이 꿈속에서 살았다. 목사님이 살아오신 길, 해놓으신 일, 이 모든 것은 꿈속에서 이뤄졌고 꿈이었다.

목사님이 우리와 다른 것은 허무맹랑한 꿈을 실현해 놓는다는 것이었다. 극히 비과학적인 일 등을 현실로 곧잘 바꿔 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 꿈을 현실로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황광은 목사님이 우리 같은 범인들과 다른 점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언젠가 목사님은 기독교 문화관을 지으시겠다고 우리들에게 곰탕을 사주시면서 그 계획을 말씀하셨다. 1, 2층은 운영비를 위해서 사무실로 대여해야지, 그리고 3층은 영화관, 4층은 연극만 할 수 있는 소극장, 5층은 주일학교 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실, 6층은 기독교 미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화랑, 8층은, 9층은, 10층은… 11층은… 목사님의 계획은 끝이 없었고, 또 그 끝없는 계획은 목사님만 계셨으면 이뤄졌을 것이 틀림없다. 후일 목사님의 낡은 수첩에서 기독교 문화관의 이사진과 간사진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또 한 번 콧등이 시큰했다.

이제 기독교 문화관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감히 그런 것을 꿈꾸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전시장과 공연장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누구나 “아, 황광은 목사님만 있었으면…” 하고 그가 가심을 아쉬워한다.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의 원로인 B선생님은 “기독교 아동문학계에서 강소천 다음에 황광은에게 악센트를 찍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다. 그 분은 계속해서

“‘황광은 아동문학상’은 왜 아직 없느냐?”고 반문했다.

목사님은 한국을 위해 일한 분이었지만, 그것에 못지않게 기독교 문화 형성을 위해 노력하셨다. 그러니까 바로 재작년 8월 15일의 일이다.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교계 신문에 관계하는 사람들을 적당히 좋아하는 체하고, 또 미워도 하고, 또 그렇게 하면서 적당히 덕과 손해를 보며 공존해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엔 서로 외면할 수도 있는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다 그렇다는 이야긴 아니지만 적어도 내 눈에 비친 것은 그랬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 1969년 8월 14일, 황 목사님이 조향록 목사님에게 찾아오셨다.

“여보, 우리 고생하는 교회 기자들을 한번 편히 쉬게 합시다.”

“그 말썽만 피우는 것들을…”

“여보, 이제 우리밖에 누가 있소. 그것들을 욕을 해도 우리가 해야 할 게 아니요?”

“좋소, 내가 차와 돈은 좀 준비하겠소. 인천 송도로 갑시다.”

후일 조향록 목사님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그 이튿날 교계 기자들은 모처럼, 정말 모처럼 인천 송도에 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목사님이 가신 지 1년. 세상살이가 힘들면 힘들수록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 모두의 입에선

“황광은 목사님만 계셨으면…”

“아, 목사님만 있었으면…!”

위와 같이 황광은 목사 추모의 글을 쓴 이반은 아직 황 목사에게 갚지 못한 문학적인 빚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황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게 ‘소년 공화국’이란 제목으로 서두를 쓴 원고를 주시면서 나더러 끝맺으라 하셨거든요. 난지도 이야기인데 어디 쓸 시간이 있어야지요.”

이제 생각하니 황 목사는 자기가 갈 날이 가까운 것을 예측하고 본인이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후배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 특유의 웃음을 머금은 채…

어쨌든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하고 간 한국 기독교 문화재단과 한국 기독교 복지회에 관한 그의 구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 기독교 문화재단>

1. 문화사업 지원 장려: ① 문학 ② 음악 ③ 미술 ④ 연극 ⑤ 언론 – 문화보존, 기독교교육, 기독교사상, 학술강좌 등.

2. 기독교 문화센터 운영 : ① 감상실 ② 도서실 ③ 연주실 ④ 공연 및 연습실 ⑤ 회의실 ⑥ 전시실 ⑦ 식당 ⑧ 커피숍 ⑨ 휴게실 – 모든 부분의 예술 활동을 준비 공연 공개할 수 있게 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한다.

이상을 위해 재단을 계속 늘여 간다. (사업부)

<한국 기독교 복지회(한국 아동복지회)>

1. 아동복지 사업 : ① 불우 아동에게 장학금 ② 불우 아동에게 영양 식품과 장난감 공급 ③ 어린이 도서 보급 운동과 아동 권리 옹호 운동

2. 노인복지 사업 : ① 노인용 안경 보급 운동 ② 오락시설과 노인그룹 지도 ③ 노인장 설치 운동

모금과 사업 수입으로 이상의 일을 수행함.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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