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선행 조건은 회개이다. 삶에서 진정한 회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맛본 사람은 회개의 표징을 드러낸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죄를 용서하는 회개의 세례 선포였다. 그리스도께서도 두루 다니시면서 회개를 선포하셨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은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촉구였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도 “회개하라”는 외침이었다. 회개를 위해서는 죄의 자각, 인간의 죄성(罪性)에 대한 깨달음과 죄와의 결별에 대한 결심과 고백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전혀 소망이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복음을 받아 들이는 데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의 뜻으로는 되지 않는다. 회개를 이루고 나면 자신이 거듭나며 새로운 성품을 입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깨닫는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의 교리이다.
루터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하나님을 알 길이 없다.” 성경이 아니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 거듭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옳다.
깨끗한 양심은 내가 얼마나 허물과 죄악으로 얼룩진 흉악한 죄인(罪人)인가를 깨닫게 한다.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빗나가고 열등하고 불행했던 자아가 올바르고 선하고 행복한 존재로 변모해 간다. 이 변화가 점진적이든 또는 갑작스러운 과정이든 일단 겪고 나면 도덕적 변화를 가져온다. 참회, 갱생, 은혜를 받는 것, 신앙을 체험하는 것, 확신을 얻는 것 등은 회심을 의미한다. 내적 변화를 통해 예기치 못했던 우리 심령에 심층(深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회심의 모습에는 여러가지 행태가 있다. 믿음으로 사람의 형상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적으로 만나게 되며 믿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오라고 부르시는 영적 음성을 듣는다. 전율(戰慄)을 동반하는 기쁨을 느낀다. 그 믿음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해서 죽은 후에 구주께서 계신 하늘나라에 가서 그 분과 함께 있고 싶어진다. 매일 매일이 안식일처럼 신성해 보인다.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 모든 인류의 행복을 원한다. 나의 적(敵)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나 조소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한 영혼을 회심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청한다. 기도가 내게 응답되기를 바란다. 성령의 감화가 느껴진다. “주여, 나는 이런 행복이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내 마음 속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채워진 것처럼 느껴진다. 성경 말씀이 내 앞에 펼쳐지고 떠오른다. 성령님은 나의 연약함을 도우신다는 말씀이 믿어지며 느껴진다.
아침에 눈을 뜨니 지난 시간에 느꼈던 행복감이 남아 있는 것을 느낀다. 더 많은 행복감을 갖기를 원한다. 숭고한 감정이 느껴진다. 회심은 의(義)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분투(奮鬪)의 과정이다. 진리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으로 향했던 관심이 하나님의 진리와 거룩함으로 향하게 된다. 옛 삶과 새 삶 사이에 구분이 이루어진다. 세상적인 습관에서 벗어나게 되며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된다. 회개를 한 사람에게서는 예수님 향기가 느껴진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며 즐겁다. 이 모든 것은 회개가 가져다주는 평화이고 아름다움이다. 회개의 미학(美學)이라고 부른다.
존 웨슬리의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점진적으로, 어떤 사람은 갑자기 변화해 간다.” 루터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어리석어 자신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보다 율법을 더 많이 찾는다. 중요한 것은 삶을 개선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의로운 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한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다. 인간의 공로는 배설물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은총, 칭의, 구원의 확실성을 얻는 것은 오직 회개가 동반된 믿음뿐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