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그렁! 댕그렁! 종치던 그날 그 교회가 한정없이 그립다. 나의 고모는 1970년대 초 경남 함양 수동의 시골교회 성도였다. 술을 즐기고 춤도 잘 추던 고모님은 일자무식인 농부로 동네 전도자들의 전도를 받고 교인이 되어 믿음 생활을 잘 했다. 한글도 깨쳐 알고 여전도회장까지 했다. 어느해 여름 내가 고모댁에 갔을 때 성경문제지를 들고 내게 질문하시며 밭에서 일하다가도 교회 종소리가 들리면 빨리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고 하셨다.
교회 종소리 들으며 예배드리던 나의 고모님이 종치는 교회에서 한글도 배우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시다가 은혜롭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고3이던 1956년 가을 처음 나가던 서울 아현동 산칠교회도 주일이나 수요일에 종을 쳐서 예배시간을 알렸다. 판잣집 교회에 방석을 깔고 앉아 예배드렸다. 성탄절 때 추워도 기쁘게 새벽송도 돌았다. 그 무렵 성도들이 성경을 옆에 끼고 교회가면 동네사람들이 귀하게, 착하게 보며 존경하기도 했다. 지금 출석하는 화성교회도 1970년대 중반까지 종치던 교회였다. 그 후로 차임벨소리 교회로 다 바뀌더니 지금은 예배시간 맞춰서 성도들이 교회를 찾아간다. 으리으리하게 크게 지은 교회에 돈자랑, 옷자랑, 차자랑 하기 위해 드나드는 사이비 교인도 많은 오늘 교회가 과연 세상 신뢰를 받고 있는가? 마치 자기가 예수님처럼 장군처럼 군림하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권위를 부리는 거짓 모습에 세상이 곱게 바라 보겠는가? 겸손과 사랑이 넘쳐야 교회가 밝고 아름답다. 올해 1월 4일 동아일보 대담기사에 은퇴 후에도 열심히 주님일에 헌신하는 김진홍 목사님은 오늘의 교회 병폐를 교회의 귀족화, 우민화, 물량화로 말씀했다. 긍정적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대형교회의 재정사건, 세습사건, 파렴치한 일 등으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가 있다. 신학교 교수나 목회자가 외제 고급차를 타고 다니는 호화로운 생활을 학생이나 교인들이 지적하고 있다.
4차 산업시대라 해도 종치는 교회 그 순수와 진실을 배워야 오늘의 기독교 신뢰가 회복되리라 믿는다. 오늘의 교회는 기독교 핵심 개혁요소인 오직 성경으로, 오직 예수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영광으로의 실천으로 세상의 신뢰를 회복하고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돌림병으로 3년 간 우리나라가 고통을 겪을 때 기독교 지도자들이 나라의 핍박으로부터 예배행위를 잘 지켜줘야 하는데 국민이 바라는 만큼 기독교의 자유를 지켜주지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한경직(1902-2000) 목사님은 북한에서 반공투사로 활동하시다가 자유 찾아 월남하시어 영락교회를 세우시고 기독교와 교육계 국제복음화에 크게 헌신하셨다. 일제시대 신사참배행위에 대해 두고두고 회개하셨다. 돌아가실 때 남은 것은 털모자, 지팡이, 휠체어 뿐이고 집도 통장도 없었다. 청빈한 기독교 지도자였다. 기독교 교계나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목회자였다. 지금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영적 지도자가 어디 있는가? 어지럽게 많은 교파 속에 주요 위치를 차지하는 명예욕에 사로잡혀 성직자가 바로가야 할 길을 잃고 있다. 시대에 따라 교회 건물이 웅대하고 잘 사는 교인들이 쇄도해 와도 십자가의 길을 잘못 인도하면 사회는 어지럽고 희망이 없는 것이다. 지금 사회가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이 들려오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정신차려 종치던 교회의 순수성을 잃지 말고 오늘의 때묻은 불쌍한 영혼들을 잘 지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 고모님이 논밭에서 일하시다가 교회 종소리를 듣고 교회로 달려와 예배드리던 그 순수한 믿음을 본받는 오늘의 교인들이 되길 빌어마지 않는다. 오늘의 기독교가 성령충만한 제자리로 돌아와서 사회에서 신뢰 넘치는 교회상을 이루길 빈다. 세속화가 아닌 신성화된 참된 교회로 세상의 빛과 소금과 소망이 되고 나라의 푸른 등불이 되길 우리 다같이 깊이 기도해야 하겠다. 하늘을 찌르는 고층 빌딩숲이 우거진 거리에 매연 뿜는 자동차가 홍수로 흐르는 이 시끄런 오늘, 나는 순박한 믿음의 그날 그 종소리가 지금도 한없이 그립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