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파키스탄 교회’의 특별한 상황 … 명예살인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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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대표적인 세인트 트리니티 교회는 카라치 교구에서 제일 크고 제일 부유층이 모이는 교회이며 카라치 주교가 설교하는 교회이다. 카라치는 파키스탄에서는 가장 먼저 발달된 항구도시로 이슬라마바드 이전의 옛 수도이며, 무역도시이다. 세인트 트리니티교회는 ‘파키스탄 교회’라고 불리는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는 교단의 가장 큰 교회였다. ‘파키스탄 교회’에는 감리교, 성공회, 스코틀랜드 교회, 그리고 루터교단이 연합하여 한 교단으로 되어 있었고 전국이 5개의 교구로 나뉘어 5명의 주교 하에 있었다. 이 교단은 파키스탄 전체 개신교 90만 명 교세에서 반이 조금 못 되는 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90만 기독교인 중, 개신교가 54만 명이었고 그 외는 가톨릭 교도였는데, 개신교 교인의 21만 6천 명이 파키스탄 교회에 속했고, 그 중 세인트 트리니티교회가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교인 수도 그 교구에서 제일 많았다.

파키스탄의 씨알코트 교회협의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부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 부부는 1857년 시크교도들을 대상으로 개척 선교를 하였다. 같은 해 토마스 선교사 부부가 살해당함으로 인해 사역이 중단되었다가, 1860년 다시 시작돼 주로 번역 선교, 일대일 전도를 통하여 소수의 개종자를 얻는 선교정책을 따랐다.

파키스탄 루터교는 파키스탄에서 다음의 구라파 선교부들의 활동으로 개척되고 성장되었다. 1)덴마크 삐탄 선교부, 2)핀란드 선교부, 3)노르웨이 무슬림 선교부, 4)세계선교 기도 연맹. 1955년에 파키스탄 루터교는 공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것도 극소수의 삐탄 지역으로 이전한 푼잡이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교회가 설립되었다.

무슬림 문화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은 명예살인을 각오해야 할 정도인데, 기독교로 집단 개종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힌두교인들이었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되기 이전에 있었던 복음 운동의 결과였다. 이렇게 개종한 이들은 거의 다 쭈르하라고 불리는 한 계층에 속했었다고 한다. 우르두어에서 ‘쭈르하’라는 단어는 ‘쥐’라는 뜻인데 이들은 ‘개’보다도 못한 쥐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이 변두리 교회는 모두 쭈르하 계층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 서구문화 전승의 도시 교회 모습과 다수가 개종함으로써 그들을 위해 초창기에 세웠던 변두리 교회(그때는 그것도 큰 변화요, 대접이었겠지만)의 전통은 변화하는 오늘의 파키스탄 사회에 걸맞지 않은 서구 선교의 오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파키스탄의 농촌기독교 상황을 정리하면서 도시 교회나, 변두리 교회, 또는 시골 교회는 다 자기네끼리 모여 겁먹고 사는 것 같이 느끼게 한다. 무슬림에게 전도한다는 생각은 커녕, 무슬림들이 자기들의 정체를 알고 어떻게 할까 두려워하는 명예살인의 위협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그 사회에서 기독교의 역할이기보다는 기독교로 개종하면 명예살인을 당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문을 닫고 자기들만 예배와 기도로 간신히 함께 하는 정도이다. 서구 선교사들도 모두 오랫동안 구제 선교를 했지만, 왜인지 예수 사랑의 복음이 아직도 아쉽기만한 곳이다. 선교에 일시적인 차원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무슬림을 일방적으로 돕는 파키스탄의 선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소기천 박사

<전 장신대 교수, 한국교회정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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