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른 아침, 나는 집 근처의 커피점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내 앞에 남루한 옷을 입은 몸이 마른 한 여인이 커피 한 잔의 값을 치루기 위해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세고 있자, 계산대에 있던 남자 직원이 말했다. “저기 있는 빵도 하나 가져가세요.” 여인이 잠시 멈칫하자, 직원은 다시 다정한 소리로 말했다. “제가 쏘는 거예요. 오늘이 제 생일이거든요! 좋은 하루 되세요!” 그 여인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빵 하나를 들고 나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내가 그 남자 직원에게 말했다. “생일날, 그 여인을 위해 빵을 사 주다니 멋지십니다! 생일을 축하해요!” 계산대의 남자 직원이 고맙다는 시늉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그 옆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직원이 말했다. “가난한 사람이 오는 날은 언제든지 저 친구의 생일이지요. 하하하!”
“그러면…” 하고 내가 말을 이으려고 하자, 계산대의 남자 직원이 말했다. “저는 그저 그 분이 먹을 것을 살만한 충분한 돈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서요.” 다음 순간, 나는 3천500원짜리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받아들고 1만원짜리 한 장을 내밀면서 “잔돈은 필요 없어요! 잔돈은 당신 꺼예요.” “손님, 하지만 이건 너무 많은데요?” 그때 내가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은 제 생일이에요.” 그때 생각이 났다. 우리 모두가 매일 매일이 생일인 것처럼 넉넉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멋진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한양대학교 야구부 소속의 박찬호 선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 신문에 난 일이 있었다. 박 선수는 아직 영어가 미숙해서 영어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LA 다저스」팀의 ‘회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미국인 동료들이 박찬호 선수에게 “영어로 된 노래 한곡을 불러 달라.”고 주문하였다. 이때 박찬호가 부른 영어노래는 “Happy birthday to you!”였다고 한다.
박찬호 선수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치는 동안 야구에 집중해서 훈련하느라 「영어 노래」를 배울 기회가 없었거나 아니면 혹시 배운 영어노래가 몇 개 정도 있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 떠오른 노래가 “Happy birthday to you.”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해본다. 아무튼 “해피 버스데이 투유”는 세계 공통의 「생일축하 노래」라는 데에는 이의(異議)가 있을 수 없다.
생일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정말 특별한 날이면서도 소중한 날이다. 생일은 단지 축하를 받고 그치는 날이 아니며 그 날은 한 개인의 존엄성을 확인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의 생일날에 생일을 챙겨주고 축하해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온 가족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일축하는 전적으로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서 갖는 축하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벤트라 하겠다. 우리는 보통의 경우, 죽은 사람의 생일은 축하하지 않는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의 생일을 기념하며 기뻐한다. 한 특정한 가족이 우리 가운데 사랑 받는 자로 살아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생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일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의 살아 계심을 믿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탄절에 성탄장식을 하고 성탄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도 역시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 마을 중에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 곳이 있다고 한다. “왜 생일잔치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태어남은 신성한 것이다. 어떻게 생일을 날짜, 시간으로 계산한단 말인가?” 정반대로 미얀마에는 매주, 그리고 매월 생일잔치를 벌이는 원주민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생일이 매주, 매월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들은 이렇게 답한다. “월요일에 태어난 사람은 월요일이 생일이고, 10일 태어난 사람은 매월 10일이 생일이다. 그러니 그때마다 생일잔치를 하는 것이다. 생일잔치는 자주 할수록 좋은 것이다.”
위에서 두 가지 상황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다. 아무튼 생일은 기쁜 날이다. 그 기쁨을 쉬지 않고 누리기 위해 우리가 맞는 하루하루가 나의 생일인 것처럼 넉넉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멋진 날들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