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총회 안에 매해 모이는 큰 집회가 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모입니다. 교회와 노회를 대표하는 총대들이 모이는 제109회기 총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대회,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전국대회 그리고 전국장로회연합회 제50회 전국장로수련회가 경주에서 개최됩니다.
이미 일자와 장소, 주제까지 고지됐습니다. 수련회에는 몇 차례 참석했지만 그때마다 조직과 규모, 강사진과 진행이 감동적이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올해 주제는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문화된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은 얽히고설킨 이유들 때문에 우리네 삶이 성경을 떠나 멀리 와 있다는 뜻이고 더 멀어지기 전 원위치로 돌아가자는 결단을 전제한 주제라고 봅니다. 시의적절한 구호여서 고맙고 든든합니다.
남의 교단 이야기여서 조심스러워 교단명을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 교단 장로연합회 수련회 이야기입니다. 1천여 명이 모인 수련회 강사로 초빙돼 갔고 모인 사람들은 전국에서 모인 장로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집회 시간마다 동일한 광고가 되풀이되곤 했습니다. “밖에 계신 장로님들은 다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강의가 시작됩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총무 장로님 이야기는 여기저기 삼삼오오 둘러앉아 정치하느라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만나고 정치하기엔 적재적소이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후, 그들이 집회 참석을 했는지, 했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석했을지 확인할 길은 없었습니다. 의아스러운 것은 왜 왔을까? 뭐하러 왔을까? 라는 생각이었고 그들이 교회 예배는 어떻게 드리고 있을까? 였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수를 다 세기 어려운 많은 제사, 절기, 월삭, 대회, 성회로 모여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 드린다든지 하나님을 만난다는 진정성은 희석되고 다람쥐 바퀴 돌리는 듯한 면역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정성도 없고 진심도 사라진 형식만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1-14)
긴 인용입니다만 우린 여기서 하나님의 아픔을 발견해야 합니다. 총회 때문에 아파하시고 수련회와 연합회 때문에 지금도 아파하신다면 그 총회, 그 연합회, 그 임원회는 왜 존재해야 합니까? 뭣하러 돈 들이고 시간 내 모여야 합니까? 성회로 모이십시오. 주제처럼 명실공히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는 미스바 총회가 되게 하십시오.
지금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한국사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면 회복되고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즈음에서 우리가 마당만 밟고 변죽만 울린다면 깊은 나락으로 굴러떨어질 것입니다. 세계사를 들여다 보면 그런 나라들이 많습니다. 왜 성회라야 합니까? 거룩하신 하나님 이름으로 모였기 때문이고 그 앞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고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하고 자복합시다. 정치는 정치를 즐기는 사람들, 업으로 여기는 사람들, 힘을 가졌노라고 설치는 사람들 그들에게 미뤄줍시다. 더이상 하나님이 “내 마당만 밟지말라, 무거운 짐이다, 너네 하는 일이 싫다 내가 곤비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게 해드립시다. 우리네를 향하신 하나님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옮겨가지 않도록 하십시다. 이번 수련회는 성회가 되게 합시다. 총회도 거룩성을 회복한 성총회가 되게 하고 정치도구로 전락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장로님, 성회로 모입시다. 성회에 오십시오.
박종순 목사
<증경총회장, 충신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