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5장을 아침에 읽었다. 서두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초대교회 공동체 생활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베드로와 아나니아의 대화 중에 성령에 대한 거짓말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느끼며 보아야 하는가? 거짓말과 죽음. 성령을 속인 죄로 사망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곰곰히 생각하면서 나는 성령님에 대하여 거짓말과 불순종과 성령님을 모욕한 사실등에 대하여 정직과 진실에 대하여 떳떳하다고 할 수 있나? 나 자신에게 물었다. 바로 무릎을 꿇고 회개의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하다가 성령을 훼방한 죄는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말씀이 기억나 그러함에도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십자가의 보혈을 기억하사 긍휼과 자비를 나에게 베푸사 죄를 사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용서를 구했다.
우리가 교회생활과 신앙생활 속에서 얼마나 성령님의 뜻을 거스르고 성령님께 거짓을 행하는지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지금 교회는 아나니아가 베드로 앞에서 거짓을 행했듯이 목사나, 성도들이 거짓을 너무 쉽게 행하고 있다. 자신을 속이는 것부터 상대방에게도 거짓을 서슴없이 남용하는데, 문제는 우리의 관계 속에 성령님이 지켜보신다는 사실이다. 총회에서부터 노회에서와 시찰회에서도, 각 지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짓을 행하여 사망에 이르려는 사람들이 있다.
모교회 목사님은 교회 앞과 시찰회 목사님들 앞에서 약속하고 공증서도 작성한 사실을 하루아침에 번복하여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것을 보았다.
모교회 목사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을 일삼아도 강단에 올라서면 거룩한 말들을 쏟아낸다.
교회의 일을 통해 교회의 재정을 자신의 통장으로 빼돌려 유용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우리가 정직과 거짓에 대하여 소홀히 여기는 성향이 많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는 신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신용이 있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정직하다는 이야기다. 사회에서는 정직과 신뢰를 동일시하며 굉장히 소중하게 여긴다. 정직은 하나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중의 하나이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내 속에 정한 영을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직한 믿음과 용기를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공병규 장로
<경남노회 장로회장, 창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