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우리 육체도 작은 우주이다. 뉴턴(Newton, 1641~1727)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데 270여 개의 뼈가 움직이는 것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의 경이로운 솜씨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칼빈은 이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는 영혼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며 ‘인간은 신적(神的)인 존재’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자연의 신비와 질서를 통해서 느끼고 볼 수 있다. 광대무비(廣大無比)한 우주의 존재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본다. 우주 안에는 참으로 정교하고 섬세한 질서가 감추어져 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천문학계의 정설이다.
칼빈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신앙의 눈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호흡은 지구를 창조하며 갱신하신다. 계시는 항상 은혜의 행위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계시하고 충만하게 주셨다”며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또한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구약 시대의 계시는 오실 그리스도의 역사였다. 성육신(成肉身)은 계시의 중심이다. 사랑과 은혜의 중심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할지라도 성경을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누구도 참 하나님을 알고 믿는 데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우리 이성(理性)으로는 완전한 이해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복된 삶의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하나님의 영광의 표시를 창조 세계에 심어 놓으셨다. 우리 마음속에는 신앙의 씨앗, 선악을 아는 양심을 주셨다.
창조 세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새겨져 있다. 하늘은 하나님의 궁전이다. 시편 기자는 별들을 보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하늘 궁창의 언어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했다.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다. 이 거대한 우주가 질서 정연하게 일정한 원리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몸의 구조와 기능을 들여다봐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솜씨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낮아져야 한다. 교만하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자기 성찰을 겸허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죄악성을 발견해야 한다. 그동안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깨닫고 느끼면서도 얼마나 부끄럽게 배은망덕했는지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창조 세계를 보면서 경이로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 활동은 영혼의 기능이다. 인간 안에 있는 신성(神性)이기도 하다. 헤겔이나 아인슈타인은 영감(靈感)이나 우주의 절대 정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질서는 하나님의 흔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사회를 섭리(攝理, Providence)로 다스리신다. 모든 죄에 대해서 진노를 하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가 된다. 경거망동(輕擧妄動)하여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나대면 안 된다. 하나님은 탐구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시다.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선하심과 구원해 주시는 은혜에 찬양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마땅한 의무이다. 나도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우리 하나님을 향해 감사, 찬양하며 살고 싶다. 하늘과 자연 만물 속에서 하나님을 느끼며 보고 싶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안에 거하고 싶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