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스승이 그리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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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듣기만 해도 몸이 먼저 굽혀지는데 왠지 겉도는 느낌이 먼저인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가슴 밑바닥에서 따뜻하면서도 정겹고 미소가 번져오는 낱말이건만 친근하게 얼른 와서 안겨지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다. 아아 비극이다. 스승의 정형을 만나기 힘들어 잊혀져 가는 유물 같은 낱말이 되어 그런 것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마음이 무겁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일으키며 자란다. 그럴 때면 부모가 불려가기도 하고 그냥 가끔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의 근황에 관해 상담도 하고 학부모와 교사들은 스스럼없이 지내던 것이 우리들이 아이들을 기르던 삼사십 년 전의 학교 현장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손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풍경은 사뭇 달라진 것 같았다. 내 아이들이 제 자녀들의 학부모 노릇을 하는 모습이 많이 사무적이어서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다투고 싸웠는데 그 일이 선생님 선에서 꾸중으로 끝나지 않고 학교폭력위원회로 넘어갔다며 해당 학부모를 위로하는 며느리의 전화 통화를 들으면서 기가 막혔던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학교에 스승은 사라지고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만이 남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던 일은 내 잘못된 생각이었으면 좋으련만 사태는 그렇지 않았다. 보통의 한 아낙의 기우가 현실이 되어버린 요즘의 세태를 보면서 답답하고 애가 탄다. 아직도 진정한 교사이기를 다짐하며 고군분투하는 많은 스승들이 학교 현장을 지키고 있다. 다만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 교사로만 각인되어지는 선생님들과 생활하는 학생들의 마음 밭이 어쩌면 더 큰 비극의 원천이 아닌가 한다. 

 스승의 날 아이들이 마음을 담아 선생님께 드리던 작은 선물조차 비리의 일종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 시킨 것은 꽤 오래전 이야기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이 교육이라는 크고도 깊고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고유의 가치관을 강탈해간 것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왜 안 할까? 

교육은 계량화할 수 없는 지엄한 가치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전부라 할 수 있다. 도시락이 없이 온 학생에게 가만히 자신의 보리밥 도시락 한 숟갈을 덜어 먹이는 선생님, 선생님이 나보다 낫다고 가르치는 학부모가 있을 때 교육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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