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에 걸친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끝났다. 올해는 유례없는 불볕더위에다 밤마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밤잠을 설쳤지만 그래도 올림픽 경기가 있어서 견딜만한 여름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경기 초반부터 어린 선수들의 예상 밖의 선전으로 즐거움이 더한 올림픽이었다.
이번 올림픽은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했다. 우선 과연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는 통념이 무색하지 않게 파리 전체를 경기장으로 만든 프랑스의 예술 감각이 돋보인 올림픽이었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 아래에 비치발리볼 경기장을 설치한 것이 그 백미라고 할까.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보여준 현란한 무대는 프랑스의 미적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올림픽 경기 기간 내내 파리 시내 곳곳의 명소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 화려한 이면에는 올림픽이 마치 전국체전 수준이라는 혹평을 받을 만큼 운영상의 미숙함이 여러 곳에서 드러나면서 프랑스 사회가 총체적으로 침체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가짜뉴스에 흥분한 극우 시위대가 도심 곳곳을 마비시킬 만큼 폭력 시위로 몸살을 앓는 영국, 에너지 정책 실패로 인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독일 등 유럽 전체가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 선수들은 경기력에서뿐 아니라 에너지 넘치는 개성미로 세계를 매료시키는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사격의 김예지 선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김예지의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과 몸동작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곧바로 여전사로 영화에 캐스팅해도 좋을 만큼 매력적이라고 감탄하고, 영국 BBC는 이번 올림픽에서 아마도 가장 멋진 선수일 것이라고 썼다. 김예지는 한류스타에 버금가는 매력을 발산한 것이다.
한류가 음악, 영화와 같은 문화 분야를 넘어서 스포츠에서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높은 도덕성과 예절을 바탕으로 하고 강한 자신감에 넘치는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때 한국인의 매력이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양궁, 사격, 펜싱, 근대 오종의 선수들이 바로 그런 매력을 보여준 선수들이었다.
필자는 이번 파리 올림픽은 역사의 주도권이 바야흐로 유럽에서 아시아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역사적 이벤트로 오래 기억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미국이 경제를 비롯한 문화 전반에서 아직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문화적으로 아시아, 특히 한국이 유럽을 넘어서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한 선수의 발언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김예지 사격선수가 25m 예선경기에서 잘하다가 마지막에 0점을 쏘고 결선진출에 실패한 후에 한 발언이다. “빵점 쐈다고 뭐 세상 무너지는 건 아니잖아요. 인생에 사격이 전부는 아닙니다.” 과거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에게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쿨한 발언이다. 필자는 이 발언이야말로 우리나라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목표달성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오히려 더 큰 성취를 가져온다는 것은 평범한 세상의 이치이다. 국익보다는 개인의 자기실현을, 목표달성보다는 과정의 공정함을, 권위적 질서보다는 수평적 소통을 더 중시하는 신세대의 사고방식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