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된 1936년 3월 26일자 <신한민보>에 안익태는 <대한국 애국가>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애국가의 태동에 관한 주요 문서라고 생각한다.
“미주 온 후 목적한 바 몇 가지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는데, 제일 급선무로 대한국 애국가 근작을 깊이 느끼고 작곡하기로 그때 결심하였습니다. 재래로 부르는 애국가 음악 곡조는 처음 스카치(스코틀랜드)의 술노래였는데, 그 후 구주 여러 나라에서 별별히 부르는데, 어떤 나라에서는 사랑가로 부르고, 어떤 나라에서는 이별가로도 부르는데, 참으로 신성한 대한국 애국가로서 그 곡조를 사용함은 대한국의 수치인 줄로 자각하였습니다. 그 이래 항상 애국가 근작에 고심하였습니다. 만은 그리 속히 성공치 못하였습니다. 실로 4천여 년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아시아 주 동반도의 도덕국인 대한국 애국가이니만큼 그리 경솔히 작곡되는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과거 5년간 구심 근작하여 약 2년 전에 처음 절은 필하였습니다. 만은 후렴은 필하지 못하고 지내던 중 지난 11월 하순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실로 하나님의 암시로 후렴 전부를 근작하였습니다. 그 후에 유명한 음악가 몇 분에게 신작한 애국가를 보였는데 음악적 표현과 애국심 표현이 충실히 되었다는 세계적 음악가의 평과, 또 동포 여러분의 충고로 더욱 자신을 얻어 대한국 애국가로 발표하기로 하였습니다. 음악의 위대한 힘이 실로 민족운동과 혁명사업에 다대한 활기와 도움을 주는 것은 과거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온데 진실로 바라는 바 이 신작 애국가도 우리 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다대한 도움이 되기를 성실히 바라는 바입니다.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실 때에는 특히 애국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르시되 결코 속히 부르지 마십시오. 처음 피아노가 전주로 4절을 연주할 터인데 그 4절의 의미는 장차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겠다는 전시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부르실 때에 장엄히 애국적 정신으로 엄숙히 부르시되, 특히 동해의 ‘해’와 백두산의 ‘백’에 힘을 주고 또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더욱 힘 있게 충만한 애국심으로 활기 있게 부르십시오. 후렴의 ‘무궁화 삼천리’는 힘 있게 부르되 크게 부르지 마시고 엄숙히 의미심장하게 부르며, ‘화려강산’부터는 화려한 정신과 깊은 애국심으로 부르고, 이어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는 처음 절 하나님과 같이 활기 있게 장엄히 부르십시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