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기 공명 학자인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통해 물이 전해주는 놀라운 메시지를 알려주고 있다. 눈(雪)의 결정이 하나하나 모두 다르다는 사실에 착안한 저자는 ‘그렇다면 물의 결정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현미경을 이용해 다양한 물의 결정체를 찍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사랑’과 ‘감사’라는 글을 보여주었을 때 물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정육각형의 결정을 나타냈다. ‘악마’라는 글을 보여주었을 때는 중앙의 시커먼 부분이 주변을 공격하는 듯한 형상을 보였고, 쇼팽의 <빗방울>을 들려주자 정말 빗방울처럼 생긴 결정이 나타났고, <이별의 곡>을 들려주자 결정들이 쉽게 쪼개진 형태로 바뀌었다. 어떤 글을 붙여주든, 어떤 말을 들려주든, 어떤 음악을 들려주든, 물은 그 글이나 말이나 음악에 담긴 인간의 정서에 반응하는 형태를 보였다. 이 현상을 확대해 인간 문제로 옮겨보자. 인간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드라마는 결국 물이 빚어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사회는 하나의 커다란 바다와도 같다. 우리는 그 바다에 하나의 물방울을 떨어뜨림으로써 이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에모토 마사루가 찍어놓은 여러 가지 물의 결정(結晶) 사진은 인간 문제에 커다란 변화와 시사점을 주었다. 그가 물의 결정체 사진을 찍기 시작한 6년 후인 1999년에 <물은 답을 알고 있다>는 책을 내놓았다. 그때까지 작은 수많은 물 결정체의 사진들이 소개되었다. 나라마다 말은 달랐지만, 물의 반응은 똑같았다. 우리말로 ‘고마워’는 영어로 ‘Thank you’, 중국어로 ‘Xiexie’, 프랑스어로 ‘Merci’, 독일어로 ‘Danke’, 이탈리아어로 ‘Grazie’인데 물의 반응은 똑같이 아름답게 나왔다. 반대로 ‘망할 놈!’, 영어로 ‘You fool!’로 써붙여 놓았을 때의 어둡고 불규칙한 결정체 역시 같은 원리가 작용했다. 사람이 던지는 말과 글에 대해 물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유리병에 든 물에게 두 개의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주었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선 한결같이 로맨틱한 형태를 보여주었고 세밀하고 잘 정돈된 아름다운 결정체로 반응했다.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과 <전원>을 틀어주었을 때의 변화가 그랬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들려주니 아름다운 결정체로 반응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려주니 흘러가는 바이올린의 음률처럼 물방울의 결정체가 이어져 있었다. 쇼팽의 <빗방울>을 들려주니까 물이 알갱이를 형성했고, <이별의 곡>을 들려주면 물의 결정이 가늘게 나뉘어진다.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려주니 백조를 나타내는 듯 무지개 빛 결정이 나타났다.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주니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봄, 꽃이 활짝 피는 여름, 성숙해 새로운 생명을 간직하는 가을, 가만히 움츠리며 성숙해가는 겨울의 모습이 물의 결정과 색깔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의식이나 말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물의 결정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난다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의 말이나 생각이 물이나 다른 물질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왜냐면 지금까지 이런 변화는 종교나 철학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물은 장엄한 모양으로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빚어내기도 하지만 전혀 결정을 이루지 못하거나 찌그러들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춰진 어둠을 상징하기도 한다. 인간의 육체는 체중의 70%정도를 물로 이루고 있다. 물주머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내게 축복과 칭찬 등 유익한 말을 해주면 내가 의식적으로 억제해도 내 몸속의 물들이 먼저 좋은 반응을 보여 기분이 좋고 치료 효과도 낸다. 반대로 억울한 소리와 비난의 소리 및 저주를 해오면 내 몸속의 물들이 먼저 아픔과 어두움의 결정으로 바뀌어 내 몸에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물들이 이렇게 정직하게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형태 박사
<더드림교회•한남대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