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희망을 갖게 하는 한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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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학자 장 웨이링은 1989년부터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할 때에 중요한 책임자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알고 난 이후 그 일을 그만두고, 오히려 이순신 장군 연구와 강의에 전념했던 사람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장 웨이링은 “이순신은 조선만 구한 것이 아니라 중국도 구한 사람이다. 그는 정부로부터 큰 인정을 받지 못했고, 부패와 당파의 수렁 속에 있는 암담한 나라의 현실 속에서도 1년 만에 허약했던 해군을 강병으로 만들었고, 한 번의 패전도 없는 승리를 일궈낸 위인이다”라고 피력했다. 

오늘날 상당한 사람들이 위기를 말하는데, 그 중의 핵심은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을 가진다고 하면, “누가? 어떻게? 희망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에 대한 답이 ‘이순신’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예수를 따르고, 예수를 전한다. 그래서 수많은 예배를 드리고, 찬양과 기도가 넘치고, 특히 이 땅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미스바 성회, 구국기도회, 회개의 성회 등 다양한 신앙 운동을 펼쳐 오기도 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교단의 지도력은 그 실효성이 없고, 교회의 부가 세습되고, 은퇴해도 물러나지 않고, 어떻게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범죄의 스캔들이 있고, 거기다가 이러한 것들을 비판하는 세력과 옹호하는 세력이 갈등과 반목을 일삼고 있다. 

과연 희망을 줄 수 있겠는가? 희망을 준다면, 어떻게 주겠는가? 바로 그 핵심이 ‘이순신’에 있다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이 계시고,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이 있는데, “왜 이순신인가?”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그같이 사심 없고, 탐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오직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 타락한 교회를 건진 사람이 프란체스코였는데, 그는 무소유, 거지 신앙 운동으로 교회를 구하는 일을 이뤄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희망이 있게 하는 것은 바로 프란체스코가 일으킨 신앙 운동과 같은 것이다. 드라마이기는 하지만, 이순신은 갖은 고문을 당하고, 겨우 목숨만을 건지고, 백의종군을 명받았다. 그가 백의종군으로 나갈 때, 류성룡은 “자네는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도 성한 곳 한 군데도 없는 이 지경이 되었는데, 조선은 자네를 위하여 준 것이 없는데, 그래도 자네는 백의종군을 하겠는가?”라고 부르짖었으나, 이순신은 그래도 백의종군해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고, 이 나라에 희망을 주었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만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 위해 백의종군을 할 수 있는 한 사람의 이순신이 필요하다. 이런 희망 앞에서 스스로 부끄러운 것은 이런 희망을 이루어내려는 용기가 없는 것이고, 이런 위인이 교회의 역사 속에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실현하지도 못하는 무능함이며, 백의종군하려는 진정성도 없는 것이다. 어느 지도자가 필자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정말 지금 이 나라, 우리 교단의 현실 속에서 희망이 될 수 있는 내려놓음, 공의로움, 겸손함이 있는 한 사람! 그 사람이 그립다. 간절하게 그립다.

증경총회장 정영택 목사

<경주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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