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코니아] 통합(inclusion)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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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올림픽에서 예수님의 성만찬을 상징한다며 드래그 퀸(남성들이 여성분장)을 한 동성애자들이 나왔습니다. 왜? 유럽인들의 사고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독일서 공부할 때에 가장 강조되던 단어가 inclusion (통합)이었습니다. 언어 시험을 볼 때도 이 단어가 자주 등장했습니다. 외국인, 장애인, 여성 모두에게 통합이란 단어가 중요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여성을 위하여” 그러면 “이제 그만해요. 그 주제 아직도 사용하세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은 연합보다 스스로 자국의 이득을 강조했습니다. 내가 보호받고, 내가 인정받는 그런 사회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EU 의미가 많이 약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에 정치인 트럼프는 inclusion 하자는 말은 동성애자들과 이주자들을 포용하자는 것이라면서 왜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합니까?라며 American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합니다. 이제 inclusion이란 단어의 의미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합보다 단지 동성애자와 이주자와 연합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예수님의 성만찬을 패러디해도 유럽 사람들이 조용한 것입니다. 

요즘 미국 직장과 미국 대학교에 가보면 당신의 personal noun을 이야기해달라고 합니다. He/him, She/her, 아직 결정하지 못했으면 They입니다. 매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런 혼돈된 가치 속에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2세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가나안 땅의 혼란스러운 가치관 속에서 예배를 잘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은 ‘예배’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전쟁’이 아닙니다. 새로운 땅에 들어가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려면 참 예배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바르게 섬기는 자입니다. 이것이 디아코니아의 삶입니다. 디아코니아 예배는 내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하며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습관화 시키고자 하나님께서는 매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예배드리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드립니까? 번제와 소제로 드립니다. 번제란 burn offering으로서 나를 태워야 합니다. 소제는 grain offering으로서 고운 가루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예배자는 나를 태워야 하고, 예배자는 고운 밀가루가 되어 자기를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예배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섬김과 이웃 섬김의 주도권을 항상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주도권을 철저히 주님에게 내어 드리는 예배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김한호 목사 

<춘천동부교회 위임목사•서울장신대 디아코니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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