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불교 조계종이 주관하는 국제선명상대회에는 2만 5천 명의 불자들과 일반인들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고 명상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5분 동안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5분이었지만 광화문 광장이 이렇게 고요함에 묻힌 적이 없었기에 놀라움과 감동이 더해졌다. 조계종은 대회를 시작으로 ‘선명상’(禪冥想)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해 지도자를 양성하고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선(禪)이란 고요히 앉아서 참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도에서 요가의 수행법으로 시작해 석가모니 이후 불교가 받아들여 전승하고 있는 수행법이다. 조계종은 이번에 이를 구체화해 실천 덕목으로 하루 5분 명상을 제시하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비결’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할 점이 있다. 불교는 침묵의 문화를 통해 시끄럽고 요란한 세상에 신선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5분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현상적으로 세상의 고요함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들의 신비감을 자극할 만하다.
여기에 비해 기독교의 이미지는 어떤가? 함성과 통성기도와 확성기를 통한 고함 소리는 시끄러운 세상과 구별됨이 없다. 기독교의 대형 집회에는 침묵의 기도도 고요한 분위기의 찬양도 찾아볼 길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 어떤 감동을 전하지도 못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불교가 자체 개발한 명상 프로그램을 세계에 수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것이 문화이다. 한국의 기독교 예배에는 자기 문화가 없다. 우리에게도 묵도(默禱)로 예배를 시작하는 고유한 예배문화가 있었다. 깊은 침묵의 기도와 심금을 울리는 차분한 찬양의 문화도 있었다. 그런데 이것을 소중히 해 묵도의 신학을 발전시키고 우리의 예배 형식을 개발하지 못했다. 오히려 묵도를 추방하고 미국교회의 예배 시작을 알리는 ‘예배에의 부름’이라는 순서를 도입해 대체했다. ‘예배에의 부름’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미국 예배의 ‘Call to worship’을 그대로 직역해 사용하는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묵도가 추방되면서 한국교회 예배와 집회에서는 동양 종교의 공통적 요소인 침묵(silence)이 사라지고 요란한 찬양과 울부짖는 통성기도로 오염되기 시작했다. 한국 기독교는 예배의 신비감을 상실했고, 세상에 감동을 전할 신선한 집회 문화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