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희 선교사] 은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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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선교사로 나갈 때 했던 기도가 생각이 난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면, 하나님의 일만 하겠습니다.”

그건 일종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선교사로 나간 후에 나는 더 건강해졌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인(sign)이다.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라는….

1999년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나도 좀 지쳐 있었다. 그래도 아직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기운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으로 이사야서 40장 31절 말씀을 주셨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를 앙망해야 된다는 말씀이었다. 힘을 달라고 해서 주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우고, 훈련받는 것은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리 더 좋은 힘, 더 강한 힘, 아니 전 인류의 힘을 다 모아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당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힘이기 때문이다.

2010년 7월에 세 번째로 네팔에 다시 올 때는 나의 선교 사역을 마무리하려는 뜻이 있었다. 

1982년에 처음 네팔로 갔으나 햇수로 29년째, 2011년이면 30년이 된다. 그래서 가족들은 물론 주변에서도 이제는 그만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쉰다는 것이 무엇인가? 안식이라는 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또 쉬면 뭐하겠는가?

만일 내가 지금 하는 의료 선교 사역을 정리하게 된다면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노인(老人)’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옛말이지만 ‘은휘(銀麾)’라는 말을 쓰고 싶다. 옛날 사람들은 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을 노인정이라 하지 않고 은휘정(銀麾亭)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노인들이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지가 문제다. 나는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돌봐야 한다는 통념을 갖고 있지 않다. 오히려 노인은 노인이 돌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노인들도 어떤 모양으로든, 크든 작든 수입 구조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를 위한 구상을 시작했지만,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할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사회를 위해 노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일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기에 그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실례로 의료 선교 현장에 반드시 젊은 의사가 올 필요는 없다. 물론 젊고 힘 있는 의사가 오면 더 좋겠지만, 어느 정도 일선에서 물러난 경험 많은 의사가 오는 것도 매우 유익하다. 반드시 장기간 체류할 필요도 없다. 적게는 한두 달, 많게는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는 것도 유익하다. 구심점만 마련된다면 서로 바통을 이어받아 현지에서 필요한 사역을 하고 현지인 의사에게 오랜 임상 경험을 전수해줄 수도 있기 때문에 은퇴한 의사들도 얼마든지 봉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은퇴한 의사들이라면 대개 노후 경제는 큰 문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내며 존경받는 여생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은퇴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어도 하던 일을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사실상 은퇴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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