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광화문 광장에 한가로운 마음으로 서 있다. 세종대왕 동상 앞에 서서 북악을 쳐다보니 기막힌 풍광이다. 그 앞으로 광화문이 보인다. 월대를 새로 복원했노라 박수들을 칠 때 와보고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이 거리를 한가롭게 걸어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지하철에 몸을 맡기고 거의 땅 밑으로 다니는 게 다반사가 되어서이다.
세종대왕을 한 번 우러르고 눈을 들어 멀리 보니 북악이 한달음에 달려온다. 기막힌 풍광이다. 시선을 아래로 주욱 끌고 내려오니 궁궐들을 거쳐 광화문이다. 경복궁은 세종대왕께서 덕치를 베푸시며 한글을 창제해 내신 위대한 공간이다. 만약에 한글을 만들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 국민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을까? 손에 든 성경을 새삼스럽게 쓰다듬어 본다.
성경의 심오한 진리를 터득하는 문제는 별개로 하고 우선 읽을 수 있어야 복음에 접근할 것 아니던가? 한자로 쓰인 성경을 읽으려면 얼마나 힘들 것이며 과연 얼마쯤의 사람이 한자 해독을 할 수 있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저 귀동냥으로 밖에 복음을 접할 수 없었으리라.
서양의 경우도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구텐베르그의 인쇄기 발명이 없었더라면 그 전파의 속도는 매우 더디었을 것이라고 사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인쇄술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어 그 전파가 엄청나게 빨라져서 효율이 극대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위대한 한글 창제 발표일 한글날과 종교개혁 주일이 맞물려 있는 10월 볕 좋은 날 복 많은 노파가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조선어학회 사건의 공로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보인다.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맨손으로 맞서 싸우신 분들이다. 저분들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얼마나 망가져 버린 한글을 우리가 배우고 살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한글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허락하셨고 역사의 고비마다 도우사 한글을 보존케 하셨다. 역사의 현장 광화문 현판, 한자 3글자가 보인다. 아니 이게 뭐야? 한자 아냐? 어머나 미쳤나봐, 그동안 이렇게 무신경했나? 아니야 내가 잘못 보고 있을거야. 당연히 한글로 썼겠지?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