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의 길] 하나님의 은혜로 두 번의 강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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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아멘.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첫 담임목회지였습니다. 목회는 햇병아리 였지만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주어진 사역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다짐했습니다. ‘바보가 되자. 목사라고 해서 교인들 위에 서지 않도록 바보가 되자. 교인들을 네 살짜리로 여기자. 그래서 교인들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섬기는 목회를 하자.’ 사랑이 넘치는 교회, 말씀으로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며 사역을 했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잠25:1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요? 참으로 부끄러움이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더 큰 사역지로 인도하셨습니다. 

갑자기 옮겨간 교회. 이 교회는 지역에서 큰 교회이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아직 햇병아리인 제가 감당할 수 있을까? 다섯 분의 장로님들과 첫 당회를 할 때 좀 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은 부족한 저를 편안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훌륭하게 목회를 하신 전임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술을 배우는 견습생처럼 답습하며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바보가 되자. 교인을 네 살로 여기자. 사랑과 말씀으로 목회하자.’ 이 초심을 잃지 않고 목회했습니다. 그렇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같은 장로님들의 지원과 사랑을 받으며 10년, 듬직한 형님들 같은 장로님들의 지원을 받으며 10년. 강산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양적으로 크게 부흥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감사가 넘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목회에 보람을 느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수십 년을 무속인으로 살던 어머니를 전도하기 위해 먼저 믿은 딸들이 간절히 기도하며 전도해 달라는 요청에 함께 전도한 결과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온 가족이 함께 예수님을 믿은 것은 놀라운 하나님 은혜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부임할 때부터 병석에 계신 할머니 성도님을 사랑으로 심방했더니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믿지 않던 자녀들이 장례를 부탁하며 교회에 나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교회 나와도 그 집은 나오지 않을 집이라고 다들 말하던 분들이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학생들이 많을 때는 발랄한 학생들의 찬양의 모습에 온 교회가 찬양의 은혜가 넘치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하지만 인구 감소로 마을에 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폐교가 되면서 파장한 장터처럼 한산함이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습니다. 찬양이 멈출 수 없고, 기도가 멈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그래서 기타를 어깨에 메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신학생 때 한 교수님이 강의를 아주 유쾌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나중에 목회를 하면 저렇게 기쁨으로 목회를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기쁨의 목회, 성도에게 기쁨을, 저에게도 기쁨을, 그리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영광 돌리는 목회를 했습니다. 그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기 위해 붕어빵을 구워 나누고 있습니다. 원근에 있는 열 개 마을에 기쁨을 나누는 마음과 전도하는 마음으로 맛있는 붕어빵을 정성껏 구워 나누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도용이라 생각하고 부담을 가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 붕어빵 날이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붕어빵에 입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듯, 예수님의 복음에 영혼이 열리기를 기도하면서 오늘도 행복한 시간 속에 기쁨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붕어빵 한 마리 배달해 드려야겠습니다.)

최대중 목사

<고당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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