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나오는 유비라는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스승 노식이 병을 핑계로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양성하는데, 유비는 그 스승 문하에 들어서 학문을 갈고 닦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식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관직으로 나아가며 학당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동문들과 뿔뿔이 흩어진 유비는 하릴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물이 불어난 강을 만납니다.
유비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강을 건넙니다. 강을 건너던 중, 뒤에서 어떤 노인이 소리칩니다.
“거기 귀 큰 아이야, 나를 업고 이 강을 건너가라.”
유비의 생김새 중 귀가 큰 것을 보고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말투도 명령조이고 무례한 말에 유비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렇게 부르는 노인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도 했고 ‘나는 젊어 충분히 힘이 있고 이미 물에 젖어 한 번 더 젖는다 해도 상관없다’며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 그 노인을 업은 채로 강을 건너왔습니다.
강 건너에 도착해 노인을 내려놓자 노인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소리칩니다. “아까 그곳에 내가 짐을 두고 왔지 않느냐.” 그러자 유비는 다시 돌아가 짐을 가져오겠다며 강에 발을 담갔습니다. 다시 노인이 소리칩니다. “네가 그 짐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 나를 다시 업어라.” 유비는 다시 노인을 업고 강을 왕복합니다. 아랫도리는 강물에 젖고, 윗도리는 땀에 젖어 도착한 유비에게 노인이 차분한 말투로 묻습니다. “너는 어째서 나를 두 번이나 업고 강을 건너왔느냐?” 유비가 대답합니다. “제가 거절하고 가버렸다면, 어르신을 업고 강을 건넌 처음의 수고마저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첫 번째 수고로움에 두 배의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죠.”
유비는 힘들어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도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다하기 위해 추가적인 수고도 감내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착수하는 것과 생각만 하고 착수하지 않는 것의 차이를 드러내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시작하지 않는 것과 시작하는 것에는 0과 1만큼의 큰 차이가 있습니다. 0이 아무리 많이 쌓여도 1이 될 수 없듯, 시작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중도에 그만둬 버린다면, 끝을 볼 수 없음은 물론 앞선 수고로움까지도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니까요. 신문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일하시는 가운데 수고로움의 과정을 거쳐 그 마무리를 지을 때까지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마음 다잡으며 두 배, 세 배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은혜 안에서 소망합니다.
손근호 장로
<경북노회 장로회장, 대구서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