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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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고대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헤로도토스(Herodotos)는 역사(Historiae)라는 주제로 「페르시아 전쟁사(Persian War IX 492~497 B.C)」를 저술했다. 그 이전에도 많은 역사책들이 있었지만, 특히 왜 그의 책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가? 누가 봐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동방의 페르시아에 비하면 아주 작은 폴리스(도시국가)였다. 그런 국가가 동방의 거대한 국가 페르시아와 싸워서 왜 이기게 되었을까? 헤로도토스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단순한 전쟁사가 아니고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의 사안(史眼)은 아테네의 민주정과 문화의 우월성을 전쟁승리의 원동력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쟁 당사자들을 객관적 시각으로 탐구 조사해 진실을 밝혀내고자 노력했다. 페르시아전쟁에서 승리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뜻하지 않게 그 전쟁이 끝난 후, 두 국가가 분열되어 델로스동맹과 펠로폰네소스동맹 체제로 경쟁하면서 갈등을 이어오다가 전쟁이 발생했다. 투키디데스는 역사(Historiae)라는 주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Peloponnesian War VIII. 431~404 B.C.)」를 저술했다.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그 책을 저술했다. 그는 민주정이 발달한 아테네가 군국주의 국가인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을 후대에 전해주기 위해서 그 책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객관적 사안(史眼)은 타락한 민주정은 전제정보다 못하다는 시각이었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좋고 우월한 체제라고 하더라도 타락하면 그렇지 않은 체제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패배할 수도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후세대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 그의 견해였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정부가 김형석 교수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한 문제를 놓고 여야 정쟁이 뜨거웠다. 겉으로 보기에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절로 보느냐 그렇지 않으면 3.1운동을 강조해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날을 법통으로 인정해 이날을 건국절로 인정하느냐의 싸움이다. 어느 견해가 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냐에 관해 해방 후 오늘날까지 자주 논쟁거리로 논란이 되어 왔다. 독립국가가 되려면 주권⋅영토⋅국민이 있어야 하는데 상해임시정부는 이 요소가 결여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를 건국절과 연결시키려는 세력들의 배경은 무엇일까? 그 내면에는 이승만과 김구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까지 전개되어 온 백년전쟁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계속되는 이 논쟁은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상호 있었던 공로를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승만의 공로는 이승만 공로대로, 김구의 공로는 김구의 공로대로 인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바라기는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의 시각으로 객관적 시각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절 문제를 풀어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소모적 논쟁을 피하고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일컫는 랑케(Leopold von Ranke)의 “역사란 본래 어떻게 있었던가?(Wie es eigentlich gewesen ist?)”와 영국의 신학자이며, 역사가인 버틀러(Joseph Butler)의 “모든 것은 있었던 그대로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Every thing is what it is and not another thing)”의 견해로 이 문제를 있었던 그대로 풀어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성경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4:27)”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편향적 사고는 거짓을 진실로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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