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월 외환위기가 시작되자마자 1998년 1월부터 실직한 외국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시작했다. 그때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위기감에 휩싸였으며 자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시절이었다. 나는 당시 강변역 유치원 지하실에서 나섬의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큰돈을 은행에서 융자받아 지하실을 빌렸으므로 은행 이자에 원금까지 갚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무료 급식을 시작했으니 자포자기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모두가 죽어 나가던 시절이었으므로 어떤 책임감과 최소한의 목회적 양심에 따라 결정한 것이 무료 급식이었다.
그러다 1999년 초순 어느 날 몽골 아이 몇이 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 몽골학교의 시작이 되었다. 만약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몽골학교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위기가 새로운 선교의 기회라는 내 생각은 그런 경험적 고백이다. 실제로 내게 위기는 창조적 선교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문제로부터 창조는 시작된다. 고난으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구로동에서 심각한 눈의 질병을 얻고 내가 간 곳은 뚝섬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쫓겨나다시피 구의동 강변역으로 이사를 했고 그것이 내게 은총의 시작이 되었다. 만약 구로동에서 병을 얻지 않았다면, 뚝섬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섬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만약 몽골 아이들이 학교 인가를 받아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 나와 몽골학교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서 만약이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당시 문제와 고통이 있었으므로 오늘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위기가 나를 성장시켰고 문제가 몽골학교와 나섬을 여기 존재하게 했다.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아마 형편없는 루저가 되어 여기저기 방황하며 살고 있었으리라.
감사하다. 아픈 것이 내게 감사하고 너무도 고맙다. 그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은총이며 주님의 섭리였다. 목자가 양을 몰고 가듯 나는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왔다. 내가 다른 길로 가려 하면 목자이신 주님은 나를 때리고 혼을 내셨다. 그래서 돌아와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어디에 초장이 있는지, 마실 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고 혼자 떠나려 하면 주님은 나를 인도하시어 초장과 물가로 데려가셨다. 인생은 이렇게 존재한다. 나의 힘이 아닌 주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은혜다. 여기 이렇게 사는 것이 은혜다. 지금은 위기가 맞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새로운 선교의 기회가 왔다. 위기는 우리를 성장시키는 에너지다. 반갑다 위기야!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