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뜨거운 가슴을 열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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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같이 삶의 보람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삶의 가치는 배우고 공부하면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교육은 지식을 통해 인격을 도약시킴으로 인생의 근본이 되고, 나라의 뿌리가 된다. 국민의 지적(知的)수준에 따라 복지사회가 이룩되고 평화롭고 부강한 나라로 성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육의 투자는 생명을 일으키는 최고의 가치다. 

우리의 고대역사는 그만두고라도 1910년 한일합방으로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채 36년간 일제식민교육을 받았다. 연합국의 승리로 패망한 일본은 마지막 제9대 조선총독인 아베 노부유키(1875~1953)는 맥아더 장군 앞에 엎드려 항복문서에 서명하면서 남긴 말이 있다.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대포나 총알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서로 시기, 질투로 분열돼 다시 식민백성이 될 것이다. 나는 분명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교육은 인간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 그런데 1950년 6·25 전쟁으로 극심한 가난 때문에 진학 못한 자들이 있기에 이를 위해 전주영생교회 강홍용 담임 목사는 1964년 3월 2일 영생대학을 설립, 개교했다. 초창기에는 야간대학에서 출발했으나 그 뒤 전주대학교로 교명을 개칭, 오늘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 대학에 1회로 입학했다. 

대학과정도 고학으로 졸업하겠다고 시퍼렇게 장담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그간 10년간 신문배달로 고학을 해왔던 자력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은 냉혹했다. 입학한 지 1년도 채 되기 전에 2학기 등록금이 벽에 부딪쳤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2학기 등록금 마련이 불가능하여 휴학하려 합니다.(중략)” 곧 어머니 회답이 도착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오늘도 밭에서 종일토록 일을 하고 호롱불 밑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농부들은 밭에 씨앗을 뿌려 놓고 추수할 때까지 얼마나 수고하는지 아느냐? 새싹과 함께 뿌리지도 않았던 가라지가 자라기에 김을 매지 않을 수 없었단다. 이렇게 시작된 농사는 물이 부족하면 물을 주고 거름이 부족하면 거름을 주면서 곡식이 여물 때까지 피와 땀과 눈물의 진액을 쏟아야만 비로소 수확이 가능하단다. 특히 곡식이 여물 때에는 최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단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농부들은 온갖 힘을 다 쏟아 최선의 노력으로 곡식을 가꾼다. 세상의 모든 일은 자연의 이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안 된다’ ‘못 한다’ 단언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를 우선 먼저 생각하라. (중략) 절대 휴학하지 말라. 휴학은 인생의 패배를 의미한다. 너의 결심은 장부의 결심이다. 이 어미는 기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겠다.” 

열 장이 넘는 편지였다. 눈물 자국이 뚝뚝 떨어진 피어린 어머니의 편지를 가슴에 안고 이길배 교무과장님을 찾아갔다. 그분의 도움으로 휴학을 하지 않고 3개월 뒤에 어머니께서 마련해주신 2학기 등록금을 학교에 납부했다. 그 다음해인 1965년 2월에 전북일보 기자시험에 합격해 대학을 졸업했고,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치게 되었다. 어머니는 지금 하늘나라에 계신다. 그러나 생전에 하신 말씀은 잊을 수 없다. 어머니는 진정 나의 스승이시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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