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또다른 복이며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호흡이 살아 있으면 살아 있는 존재입니다. 숨이 붙어 있으면 살아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어떻게 받은 것입니까? 사도행전에서는 그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1) 기다리자(행 1:4), 2) 기도하자(행 1:14), 3) 모이자(행 2:1), 4) 회개하자(행 2:38), 5) 순종하자(행 5:32), 6) 말씀 듣자(행 10:44), 7) 안수 받자(행 19:6)
다음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은 용서입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이 죄를 사할 권세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죄 사함의 권세는 하나님만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만일 사람이 죄를 사할 수 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말씀을 잘못하신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인간의 죄를 사해줄 권세가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할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4번째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용서입니다.
초대 교회 알렉산드리아학파의 교부 오리겐(Origen)은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병원이다. 모두가 다 죄인이다. 의인은 없다. 의롭다 함을 얻었을 뿐이다. 그런고로 교회에서는 시비가 있을 수 없다. 누구를 비판할 수도 없다. 정죄할 수 없다. 이것이 교회다.” 그렇습니다. 곧 죽을 환자들이 누가 누구를 정죄합니까? 용서가 있을 뿐입니다.
하도리 아끼라(羽鳥明)라는 사람이 쓴 <행복의 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가정이 아주 불화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서로 시비하고 헐뜯고 온 집안 식구가 난리입니다. 매일매일 다투고 큰소리가 납니다. 가장되는 분이 너무 속이 상해요. ‘이거 왜 우리 집안은 이 모양일까?’ 그런데 바로 옆집을 보니까 자기 집보다 훨씬 가난하고 어려운 것 같은데도 웃음소리가 항상 담장을 넘어와요. 온 집안이 웃고 화목해요. 그래서 물어봤대요. “가만히 보니 우리 집안은 밤낮 싸움이고 당신 집안은 항상 웃음이 있는데 무슨 비결이 있습니까?” 옆집 주인 되시는 분이 “당신네 집에는 선한 사람만 살고 우리 집에는 죄인만 삽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의인만 사는 집은 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네 책임이다. 네 책임이다”라는 공방 속에 싸움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한 집은 죄인만 사니까 문제가 생기면 “내 잘못입니다. 내 잘못입니다” 합니다. 아들이 지나가다가 놓여진 화분을 깨뜨리고는 “아이구,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면 그 어머니 하는 말이 “내가 거기다 놓아둔 게 잘못한 거지.” 아, 그러니까 또 아버지는 “내가 그거 치우지 않아서 잘못이지.” 또 한 사람은 “애당초 내가 그 화분을 사 온 게 잘못했지.” 전부가 내 잘못, 내 잘못하니까 평안합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용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집, 교회, 세상에 용서가 있으면 평안합니다.
이정원 목사
<주하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