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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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年前)의 일이다. 도서관에서 다음 주 신문에 실릴 칼럼을 쓰고 있는 중인데 핸드폰 벨 소리가 들린다. 얼른 받아 보니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신문사 사장님으로부터 온 전화다. 나의 이름을 대면서 이러이러한 분인데 혹시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45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담임 선생님이십니다. 좀 뵙고자 합니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제자분의 핸드폰 번호를 제게 알려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한 뒤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곧바로 제자에게 전화를 했다. “예, 제가 박00인데요.”/ “나 하재준이야. 신문사에서 전갈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모 항공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년 전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신문사에 재직하고 계시네요. 지금 80이 넘으셨지요? 방금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신문에 실린 선생님의 칼럼을 읽고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내일이라도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다.

박 군은 지난 날에도 진한 감동을 주더니만 오늘도 내게 정감을 일으킨다. 그가 25세에 장가를 들던 날이었다. 나는 예식장에 갈 수 없음을 솔직히 고백했다. 학력고사를 며칠 앞둔 고3 학생들의 수업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축하금과 함께 내 글이 담긴 『전북문학』 83호를 결혼선물로 주었다. 그다음 해 3월 어느 날이다. 그는 꽃다운 아내와 함께 누추한 내 집에 찾아 왔다.   

“어서 오게.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군.”/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어제 아버지 생신이라서 본가에 들렀다가 선생님 뵐 겸 아내 인사도 시켜드리려고 찾아왔어요.”/ “실은 저보다도 이 사람이 선생님을 찾아뵙자고 졸랐답니다.” 

나는 그의 아내에게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해주었어야 옳을 일인데 이렇게 인사를 먼저 받습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축하금도 보내주셨고 저희들 결혼선물로 주신 선생님의 글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살아보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답니다. 그런 저희들이 인사가 늦어 죄송스럽습니다.” 

나는 아직도 교육이론을 터득하지 못했다. 이것이 교육이구나, 하고 한 번도 깊이 깨달아 실천한 적도 없다. 오직 학생들이 있기에 내가 교단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얼마나 될까. 스스로 깨달아 열심히 공부해서 가르쳤을 뿐이다. 항상 뒤돌아보면 학생들에게 부족하게 가르쳤을 뿐이고 나의 수양 부족으로 만족한 인간교육을 시키지 못했다. 그저 월급 받는 교사가 아닐까, 반성을 해보곤 했을 뿐이다.

나는 돈도 권력도 없다. 제자들이 잘 되는 보람으로 살고 싶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살아다오. 가장 훌륭한 삶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이룩했느냐에 따라 삶의 가치와 보람이 주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떳떳하게 살아왔노라고 자부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후손들에게 길이 남길 삶이 아닌가.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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