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혼자가 되어간다. 처음부터 친구도 많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렇다. 아무도 없다. 잠이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날 어쩌다 보고 싶은 사람 이름이라도 기억하려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가 없다. 있지만 만나지 않으니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친구도 가까이 만나지 않으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나는 그런 친구들만 남았다. 한때는 좋아하며 만나고 지냈던 친구들이다. 과거의 친구들이다. 지금의 친구는 없다.
눈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간관계도 잃었다. 내가 밖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이 관계의 줄도 끊어 버렸다. 원래 사람 사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제 완전히 고립된 무인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나는 고독한 무인도에서 살고 있다.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 홀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홀로 살지만 그래도 좋다고 한다. 좋아하는 낚시도 실컷 하고 무인도에서 자라는 식물을 채취하고 갯벌에서 조개도 캐고 홀로 살아가는 삶이 외롭게만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아마 내가 그런 무인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지금 무인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닐까?
나섬이 “나는 섬에 산다”는 말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이제 정말 나는 외롭고 고독한 섬에 사는 사람이 되었다. 친구도 없고 사랑하는 이도 없는 작은 섬에서 나만 홀로 살아간다. 어릴 적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가 떠오른다. 그때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다. 완전한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이야기는 얼마나 흥미롭던지! 그러나 지금 내가 무인도에서 살아 보니 참 외롭고 힘든 일이다.
나는 여전히 가보고 싶은 곳이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의도적으로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만나려면 여러 사람에게 신세를 져야 하니 번거롭고 마음이 선뜻 허락하지 않아서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서인지 그런대로 홀로 살아가는 것에 이골이 났다.
그러나 답답할 때는 정말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미치겠다. 미칠 것 같은 마음을 추스르는 것은 참으로 힘들다. 그런 날은 아내에게 신경질을 내고 내 안에서 타고 있는 불길이 나를 태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점점 태워져 사그라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아예 다 태워버리라고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망감으로 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참 힘들다. 나 같은 사람은 정말 미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 미칠 것 같은 날이 자주 찾아온다. 이러다 어느 날 정말 떠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눈물이 난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열정적으로 살았다. 내 안에 그런 에너지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고독함을 열정으로 이기려 했고 나름 작은 성과도 얻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또 외로워 마음 둘 곳을 찾는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