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이야기] 아내에게 쓴 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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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본처를 조강지처(糟糠之妻)라고 한다. 이 말은 중국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나오는 말로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아내라는 뜻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일화가 있다. 중국의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는 누이동생이 청춘과부가 되어 늘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하루는 누이동생을 불렀다. “너, 개가할 의향이 있느냐?”하고 물으니 잠시 후 얼굴을 붉히며 “예 있습니다. 그런데 송 재상(宋宰相) 외에는 개가할 대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 재상의 부부는 어느 부부 못지않게 금실이 좋은데 그런 화목한 가정을 파괴해가면서까지 누이동생과 결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 동안에 아무 영문도 모른 송 재상이 광무제 앞에 찾아와 “무슨 일로 고민하고 계십니까. 신(臣)에게 말씀하시면 목숨을 다해 고민을 풀어드리겠습니다”라고 3차례나 찾아와 충절을 맹세했으나 ‘광무제’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이에 송 재상은, “이같이 고민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심은 신(臣)을 믿지 못하신데 어찌 재상자리를 지키고만 있겠습니까? 물러가려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송 재상의 손을 꼭 잡으며 “재상에게 할 말을 못해서 그러한데 그게 무슨 말이오. 내 고민을 꼭 듣고 싶단 말이오?” 하며 누이동생이 한 말을 모두 전한 다음 “재상의 의향은 어떠하오?”하고 물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다가 무겁게 입을 연, 송 재상은 “糟糠之妻 不下堂이요, 貧賤之交 不可忘이라.” 이 말을 남기고 재상직에서 물러났다. 이를 풀이하면 “빈곤 속에서 그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살아온 아내인데 어찌 집 밖으로 내쫓을 수 있으며, 가난하고 천할 때 사귄 친구를 죽는다 할지라도 어찌 이를 잊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송 재상은 부부의(夫婦義)를 지키기 위해 재상직을 버리고 왕명까지 거역한 셈이다. 그는 그 뒤 낙향해 문중선산 뒤를 일구어 농민의 생활로 여생을 마쳤다. 광무제는 송 재상이 과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알기 위해 지난날의 삶을 알아봤다. 

어릴 때 양친을 여의고 가까운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자랐으나 재치가 뛰어나 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나이 15세가 넘으면 한(漢)나라에는 과거를 볼 수 없도록 그런 제도가 있었기에 아무리 공부를 한다 해도 과거는 볼 수 없어 출세가 불가능 했다. 왜 그런 법이 제정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 생각해 보니 인생의 사춘기 시기였다. 이 무렵은 아무리 조심해도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강한지라 그런 자에게 국사를 맡길 수 없다는 의미였으리라. 이런 동양 윤리 면에서 볼 때 수긍이 되었다.

송홍(宋弘)은 그해 장가들 것을 가까운 친척에게 말한 뒤 이웃 마을 18세 된 가난한 처녀와 정화수를 떠 놓고 혼례를 올렸다. 그 뒤 3년간 혹독한 가뭄으로 가정경제는 말이 아니었다. 시집온지 며칠 되지 않은 그의 아내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제안했다. “가정은 저에게 맡기고 글 읽기를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런지 10년간 낮에는 품팔이로 밭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길쌈으로 온갖 심혈을 다해 글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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