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는 BC 648년 경 여덟 살에 왕위에 올랐다. 당시 유다 왕국은 므낫세, 아몬을 거치면서 우상 숭배가 성행해 거의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처럼 사악(邪惡)한 시대에 우상을 숭배하는 왕 밑에서 자랐으나 요시야는 왕이 된 이후 유다를 하나님께로 다시 이끌었다. 우선 성전(聖殿)을 수리했다. 목수들은 대들보를 다시 세우고 석공들은 성전 벽에 쓰일 석판들을 다듬었다. 요시야는 우상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어느 날, 한 제사장이 공사장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두루마리 율법 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이 기록된 원본이었다. 학자들은 대부분 <신명기>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져 있었다. 요시야 왕은 발견된 문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수치감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의 옷을 찢었다. 요시야 왕은 맹세했다. ‘자신과 온 백성은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요시야는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 시대에 세워진 아세라 목상, 태양상 등을 모조리 추방했다. ‘요시야처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킨 왕이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요시야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충성했으나 한 순간 흔들리면서 잘못한 결정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시키고 말았다. 지금도 우리는 참을성이 없이 서두르다가 실수를 저지를 때가 많다. 우리가 평생을 두고 이룰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이다. 제자의 길과 순례의 길은 그만큼 어려운 길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언제나 순종과 충성심만 있다면 신실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요시야는 유다의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왕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라 안의 우상을 없애는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요시야는 이방 나라와 동맹하라는 유혹에 넘어지고 말았다. 어리석은 판단이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를 무시하고 애굽 군대와 싸우러 전장으로 나갔다. 아! 요시야 왕은 예루살렘 므깃도 전투에서 39세 젊은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다. BC 609년이었다. 31년 재위했다. 나라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합 왕도 선지자 미가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했다.
그 후 유다는 요시야의 치명적인 실수가 가져 온 상처를 돌이키지 못했다. 애굽은 유다에 꼭두각시 왕을 세웠다. 예레미야는 유약한 왕 네 명,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을 섬겼다. 그들 모두가 선지자의 메시지에 냉소와 경멸을 보였다.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의 길로 치달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다윗의 등불’을 끄시진 않으셨다.
예레미야는 일생을 통해 어두운 메시지만 전했다. 슬픔에 젖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위대한 왕국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애가(哀歌, Lamentations)를 지었다. 황폐한 예루살렘,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선지자의 고통과 소망, 예루살렘의 멸망, 구원을 위한 기도가 애가의 내용이다. 지금도 우리는 애가를 봉독하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난다.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한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를 보고 싶다. 하나님의 백성은 기름 부어 세우신 목사님으로부터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